2017.06.10 15:51

 

 

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공동기획전! 67년만의 귀향을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67년만의 귀향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창설 10주년을 맞이하여 발굴한 전사자의 유품과 신원을 확인한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6·25전쟁의 아픈 역사를 알아보고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 특별전시회인데요..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공동기획전! 67년만의 귀향을 살펴볼까요?^^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4월11일부터 6월11일까지 개최하는 특별전시! 67년만의 귀향..

 

 

 

 

67년만의 귀향 (Bring Them Home)

전시장 입구의 팜플렛과 함께 전시회를 관람하면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고 이해가 쉬워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프롤로그부터 1부 나라에 바친 생명, 2부 잊을 수 없는 이들, 3부 그리운 집 가족의 품으로, 에필로그까지!

또한 영상실도 마련되어 있었는데요.. 귀여운걸과 함께 차근차근 살펴볼까요?ㅎㅎ

 

 

 

 

프롤로그 -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억합니다

(Prologue - In the memory of those who could not return from the battlefields)

북한의 기습적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에 대한민국 수많은 젊은이들이 참전하였고, 

16만 3천명에 이르는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는데 전쟁 중 2만 9천여 명의 유해가 수습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13만 3천명의 유해가 우리 산하에 남겨졌다고 해요.. 나라의 부름을 받은 아버지, 형제는 전쟁터로 나가 산화한 후에

이름만이 돌아오게 되고 가족들에게는 총소리, 공습, 피난 등 수많은 전쟁의 기억 중에 찾지 못한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응어리처럼 남았는데 전쟁의 아픔은 바로 사랑하는 가족과의 헤어짐이죠..

삶이 언제는 죽음으로 바뀌는 전장에 나간 군인을 위한 긴 기다림.. 이제는 돌아올 수 없음을 전사통지서 한 장으로

확인하고, 위패라도 모실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온 날이 이제 60년이 훨씬 넘었죠..

격전지에 시신이 남겨진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해 신원확인을 하는 사업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2007년 창설, 이하 국유단)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요!

2000년 이후 찾은 국군 전사자 유해는 9,500여 위이며, 2017년 4월까지 신원을 확인한 전사자는 121명이라고 하네요~

꼭 찾으러 오겠다는 지키지 못한 전우의 약속을 이들이 지켜나감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1. 나라에 바친 생명 (Lives sacrificed for the country)

6·25전쟁 발발 때에 육군, 해군(해병대), 공군에 103,827명의 병력이 있었고, 경찰 48,283명이 복무하고 있었다고 해요..

기습 남침한 북한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밀려, 국군은 3일 만에 서울을 내주고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했으며

유엔군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고 국군은 반격을 시작해 압록강까지 이르렀지만,

중국군 참전에 따른 후퇴, 중부 전선에서의 교착전이 있었다고 해요..

이렇게 한반도 전역에 걸쳐 격전에 격전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70만 명이 넘는 병력이 새로 충원되었고,

학도병, 국민방위군의 동원도 있었는데 이들 중 수많은 병사들이 죽었고, 현장에 남겨진 유해도 13만이 넘었다고 하네요..

6·25전쟁 국군과 유엔군의 인명피해 현황, 6·25전쟁 개전 당시 남북한의 전력비교,

당시 한국군이 사용한 철모 등을 전시되어 있었어요~

 

 

 

 

1-1. 나라의 부름을 받고 (Called to serve the country)

6·25전쟁 개전 초 21,478명의 국군 전사자가 있었고, 낙동강 방어전에서만도 14,125명의 전사자가 있었다고 해요..

국군과 경찰, 그리고 유엔군의 저항 속에서 계속적으로 전사자가 발생했고, 끊임없이 신병을 배치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며

전쟁 발발 직후에는 전선의 상황이 급해 학도병 등 신병을 제대로 훈련시킬 여유가 없어

신병은 몇 시간의 기본 사격훈련 후 전장에 투입되기도 했다고해요..ㅠㅠ

전쟁 초기에는 징집자명부 작성, 징병검사 등의 입영 절차가 제대로 실행될 수 없었고

실제로 신병훈련소에서 4주~16주의 훈련을 받고 각 사단 등으로 배치 받는 것은 제1신병훈련소가 만들어지면서라고해요!

제1신병훈련소는 1950년 8월 14일에 대구에 설치되었다가, 1951년 1월 22일 제주 모슬포로 이전하였고,

제2신병훈련소는 1951년 11월 1일 논산에 설치되었다고 하네요..

군인들은 신병훈련을 마치고 잠시 가족과 만나지만, 그 기억을 뒤로하고 전쟁터로 향했다고 하는군요..

6·25전쟁에 참전한 국군 장병들이 출정할 당시 조국 수호를 맹세하며 서명한 무운장구 태극기, 군입대 홍보 포스터,

입대축원자수, 국제보도연맹에서 1952년 발간한 사진화보집으로 세 아들을 육군 공군 해군으로 보낸 어머니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 PICTORIAL KOREA 1951-1952, 전쟁 참전을 기념하기 위해 수여된 휘장인 6·25전쟁 종군기장,

철도경찰대 전출자 명부, 고흥경찰서 소속 경찰 참전 기념사진, 대한경찰전사 제1집 민족의 선봉, 태안사전적,

국립경찰전문학교 졸업기념 사진첩 등을 살펴보았어요~

 

 

 

 

1-2. 전선에서 (On the front line)

전투가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졌기에 이들이 마지막 숨을 쉬었던 공간도 전 국토에 산재하는데

이들이 전사한 공간은 6·25전쟁의 주요 격전지라고 해요..

한 전우는 1950년 9월 안강전투에서 두 명의 전우를, 한 명은 형산강 건너서 한 명은 경주방향 300고지에 묻었다고 해요~

한 전우는 1952년 여름, 강원도 인제, 김화지역 전투에서 분대원 8명을 현장에 묻고 계속 전투를 했다하고,

한 전우는 1952년 3월 가리산 전투 때 전사한 중대원을 700고지 8부능선 교통호에 묻었다고 하네요..

전투 현장에서 국군 병사들은 북한군, 중국군과 싸웠고, 그 자리에 묻힌 후 하염없는 시간만이 흐르게 되었죠..

6·25전쟁 당시 전투 상황을 재현한 전투 진지 모형을 보니 더욱 실감이 나더라구요~

진지는 전투를 위해 작은 규모로 파놓은 참호인 개인호와 개인호들을 연결하기 위해 길게 판 교통호 등으로 구성되는데

유엔군과 합동으로 작전이 진행된 전투 진지는 모래 주머니를 사용해 더욱 견고하게 지었다고 하네요..

 

 

 

 

1-3. 전사통지 (Casualty notice)

전쟁 초기와 낙동강 방어전에서 많은 전사자가 있었지만, 1951년 이후에도 전방에서의 교착전에서 많은 국군이

전사했는데 국군 5만여명이 이 교착전 기간 동안 묵숨을 잃었고 고지쟁탈전이 계속되었다고 해요..

1951년 8월 강원도 양구에서 단장의 능선 전투가 있었는데 894고지, 931고지, 851고지를 연결하는 이 능선을

되찾기 위해 30일간 싸웠다고 하네요.. 1952년 10월 경기도 철원에서 백마고지 전투가 있었는데 철의 삼각지대라 불리는

철원, 평강, 김화는 국군과 유엔군이 중국군, 북한군과 대치해 있었고,

백마고지 전투에서는 국군9사단이 중국군 2개 사단에 맞서 6번이나 적에게 고지를 내어 주었지만 7번째에서 끝내 지키고

1953년 6월 강원도 고성에서 351고지 전투가 있었는데 공산군은 국군과 유엔군 38연대가 점령하고 있었던

351고지를 탈취했고 국군과 유엔군의 재탈환 작전은 실패했다고 해요..

수없이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상황에서 유해를 수습할 여유는 없었고 1953년 여름 긴 전쟁이 끝났다고 하네요..

어머니는 전장의 아들을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않았고 전사통지서, 실종확인서 만이 왔는데

이 종이쪽지는 전쟁 중 또는 전쟁이 끝나 한참이 지난 이후에 집으로 날아들었다고해요..

 

 

 

 

전사자 매장 및 화장 보고서, 묘소 기록 문서, 전사자 명부, 불명자 군번순 명부,

전사통지서 양식, 전사확인증과 봉투, 전사통지서, 모자원직제, 상이군경 및 군경 유가족 신고 안내장,

상이군경 및 군경 유가족 신고 포스터, 원호의 달 포스터, 전몰경찰 합동제사 사진, 전사자 유가족 초청행사 사진,

제3차 육·해·공군 전몰장병 합동 추도식 안내장 등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군인들에게 지급한 개인 정보가 기록된 국군수첩, 전장에서 음식을 덜어먹을 때 사용하는 식기,

대검을 안전하게 소지하기 위한 대검집, 한국군에 기본으로 지급한 M1 소총,

소총의 끝 부분에 꽂아 백병전에 사용하는 M1 대검, M1 소총의 M1 실탄, M1919 기관총탄(250발)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영상실에서는 고 박영구 하사의 딸 박래순님, 고 장복동 일병의 아들 장윤채님의 영상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2. 잊을 수 없는 이들 (Unforgettable people)

총알이 빗발치는 참호 속에 남겨진 전우를 어떻게 잊을까..

남겨진 유해라도 찾아 가족에게 보내 드린다는 약속을 언제쯤 지킬 수 있을까..

수습하지 못했던 전사자 유해를 찾기 위한 노력은 전쟁 직후부터 1960대까지 있었고,

1967년에는 포항 일대에서 유해를 수습하기도 했다고 해요.. 

한동안 유해발굴감식사업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잊을 수 없는 이들을 꼭 찾아야 한다는 염원은 2000년부터

유해발굴감식사업을 다시 시작하게 했고 전쟁 때 만나 함께 싸웠던 전우를 떠올리며

이제라도 그 약속을 지키고자 했다고 하네요..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도 잠시 감상했는데요.. 퀴즈를 풀려면 꼭 살펴보아야 한다는 사실^^

 

 

 

 

2-1. 전사자를 찾아서 (In pursuit of finding those who lost their lives in the war)

나라를 위한 그들의 희생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이름 모를 산야에 남겨진 전우를 하나 둘씩 찾았다고 해요..

각 전투지역의 정보가 수집되었고 전사자 유해가 묻힌 지역에 대한 증언을 할 수 있는 참전용사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적극적인 발굴사업 필요성이 제기되어 2000년 6·25전쟁 50년 기념사업으로 국군이 유해발굴사업을

경상북도 칠곡군 다부동에서 시작하였다고 하네요~

2007년에는 국유단이 창설되고, 2008년에는 6·25 전사자 유해의 발굴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며

국유단은 국립서울현충원의 위패, 묘비를 분석하고 참전 용사들의 제보와 증언, 그리고 전쟁사료 상에 나타나는

주요 격전지를 정리하고, 현장을 조사하여 전사자 유해소재 지도를 만들었으며 발굴된 유해와 유가족의 친족관계를

비교하기 위해 유가족 유전자 정보를 수집하였는데, 유전자 정보를 얻기 위해 매년 현충일을 전후해 국립 현충원에서

채혈 기동팀을 운영하고, 서울역 등 다중집합 시설을 찾아가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는 등 가족 중 전사자가 있는 사람들의

유전자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해요.

2010년 국유단은 유해발굴 계획, 조사, 발굴, 감식 업무가 위계적으로 연결되고 업무에 필요한 자료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전사자 종합정보체계를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2-2. 이름 없는 유해 (Nameless remains)

전사자 유해발굴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치는데 먼저 발굴준비, 참전용사의 증언,

주민의 제보와 함께 전투기록 분석을 마친 후 전사자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 현장을 답사,

개인호 교통호 전투잔해 등의 전투 흔적을 살피고 발굴할 곳을 선정,

산골 깊은 곳 마른 땅을 조심스럽게 파기 시작한다고 해요..

유해는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철모를 쓴 채 잠들어 있는 군인, 인중에 총탄 두 발이 박힌 군인,

밥그릇을 안고 누워 있는 군인 등 처첨한 전쟁터의 모습과 전우를 묻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게 되는 것 같아요..

다음은 발굴과 수습으로 유해발굴의 시작을 알리는 개토식을 하고, 현장을 파 내려가며 유해를 발굴하고,

유해를 오동나무관에 넣고 임시로 봉인하면 이름 없는 이 유해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일이 남게 된다고 하네요..

유해소재 분석지도, 유해발굴 기록지, 유해발굴병사 발굴복, 유해소재 조사 탐사용 장비, 유해발굴 장비도 살펴보았어요~

 

 

 

 

2-3. 그날을 말하다 (Talking about the day)

일 만 여명의 유해와 함께 수십만의 유품이 세상에 드러났는데 철모, 소총, 탄약과 탄피, 대검과 대검집, 허리띠의 버클,

판초우의, 전투화 밑창, 야삽, 호루라기 등 긴 시간만큼 삭아 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관등성명이 붙어 있는 군복은 없어지고, 단추만 그 자리에 남은 경우도 있고

가끔 운 좋게도 인식표, 신분증이 발견되어 전사자가 누구였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한모금의 물로 타는 목을 축였을 수통, 식판을 닥닥 긁어 한쪽이 닳은 숟가락, 플라스틱 빗, 칫솔, 비눗갑, 사발, 라이터,

구두약, 손거울, 손목시계 등 일상생활의 흔적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전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기도 하고 헤어짐의 슬픔을 그대로 간직한 물건도 있고

그리운 가족에게 편지를 쓰던 만년필, 연필, 전우의 마음을 애잔하게 했던 하모니카, 목에 항상 걸고 다녔던 목걸이,

사랑하는 가족의 사진과 편지 등 60여 년 전 그날의 현장..

 

 

 

 

3. 그리운 집, 가족의 품으로 (Lives sacrificed for the country)

오랜동안 소식을 잃었던 이가 작은 함에 담겨 가족에게 돌아가는군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는 환영 현수막이 걸렸고, 함을 든 군인은 문을 두드리고

전사자의 이름을 알리는 군인의 떨리는 목소리에 가족은 한없는 눈물로 함을 어루만지게 되죠.. 

그러나 조국의 산하에서 찾아 온 일 만 여의 유해는 아직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해

그가 누구인지를 찾는 본격적인 작업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고 해요..

우선 국군인지 혹은 적군인지를 판단하고 삼차원 스캐너 같은 장비를 이용해 정밀감식을 진행하고, DNA도 감식해

데이터 베이스에 있는 유가족들의 DNA와도 비교하여 유해가 어떤 사람과 가족관계에 있는지 확인한다고 하네요..

언젠가는 모든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해 봅니다..

 

 

 

 

3-1. 전사자 이름 찾기 (Identifying the names of the fallen)

유해발굴 현장에서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요..

치열한 전투 현장에서는 국군, 유엔군, 북한군, 중국군 유해가 함께 발견되는데

모두가 머나먼 곳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므로 이름을 찾기 위한 작업이 시작된다고해요..

국군과 북한군, 중국군을 유해로 분별하기는 어려워 유해와 함께 발견된 군복의 단추, 소지품을 살피고

함께 있는 소총과 탄약을 점검하지만 정확하다 말할 수 없다고 해요..

전쟁당시 국군과 북한군 등은 노획한 상대방의 장비와 물품을 사용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당시 전투 상황을 분석하고

부대의 배치, 공격과 방어의 전술을 살펴보는데 수없이 일어났던 고지쟁탈전에서는 이러한 분석도 정확하기가 어려워

어떤 유해는 아군인지 적군인지의 판단을 유보하기도 하는데 전사자 한분 한분 이름을 찾기는 갈 길이 먼 여정이라고해요

PPS-43 기관총, Mosin Nagant 소총과 탄환, 중국군 전투화와 수통, 국군 수통과 전투화, 기관단총 등을 살펴보았어요!

 

 

 

 

3-2. 첨단과학의 힘으로 (With the power of advanced technology)

국군으로 판명된 유해는 정밀감식을 위해 국유단 중앙감식소로 옮겨지고, 유해와 함께 발견된 유품도 함께 오는데

인식표, 사진, 이름을 기록한 유품 등이 있는 경우 유가족을 찾아 DNA를 확인하여 신원을 확인한다고 해요..

유품이 없는 경우는 유해의 DNA와 모든 유가족의 DNA를 비교하는데 만약 치아를 포함한 두개골이 수습된 경우라면,

슈퍼임포즈기법 등으로 유해의 얼굴 모습을 복원해 신원확인의 자료로 삼기도 한다고 해요..

근래에는 DNA 감식기술이 발달하여 유해감식에 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하는군요~

DNA 감식은 1차로 모계혈통을 대상으로 mt-DNA를 이용해 감식하고 2차로 부계혈통을 대상으로 n-DNA를 이용해

감식하는데 mt-DNA는 유해의 조직 유전자와 생존 친인척의 조직 유전자를 비교하는 방법이라고 해요..

n-DNA는 Y-STR 검사와 Autosomal STR 검사가 있는데, Y-STR은 남성의 Y염색체를 Autosomal STR은 여성 자녀의

유전자를 비교하는데 전사자의 신원확인의 성패는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에 달려있다고 하네요..

임시 감식소에서 이송된 유해와 유품은 전처리실에서 이물질 등을 제거한 뒤 기본 정보를 등록한 이후

주감식실로 옮겨 첨단 감식 장비를 활용해 발굴된 유해의 정밀 감식을 수행함을 모형을 통해 생생히 살펴볼 수 있었어요~

 

 

 

 

발굴된 유해나 유품의 미세한 부분을 정밀 분석하는 측정장비로

육안으로 관찰이 불가능한 전사자 유품에 사용되는 미세영상 분석기기,

발굴된 유해나 유품의 미세흔적을 상세히 분석하는 장비로

다양한 측정 및 통계분석이 가능한 첨단기기인 미세영상 분석광학기기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첨단과학의 힘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3-3. 드디어 가족과 만나다 (Finally getting back together with family members)

아버지가, 오빠가, 동생이 이렇게 돌아오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60여년의 긴 기다림이 그리 만들었지만,

함께 돌아온 유품이 보이고 애절한 눈빛을 한 작은 사진이 보이고 재회가 믿기지 않고 가족들이 이야기를 털어놓고,

마지막 전투에 나가기 전 가족에게 건네었던 사진을 꺼내 보이며 전쟁터에 보낸 편지와 엽서를 간직하며 살았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고 아버지가 불러주었던 이별가를 기억하며 제주 훈련소에서 만났던 날을 잊을 수 없고

아버지 없이 살았던 평생을 한을 풀었다고 하네요! 형을 만나기 위해 전투에 참가했던 동생은

보고팠던 형을 유해로 만나고 북녘 땅에서 발견된 유해는 지구 반 바퀴를 돌아 가족의 품에 안기기도 하는

모두가 한편의 마음 아픈 드라마죠~

 

 

 

 

하사, 일병, 일등상사, 이등상사 등 신원확인 전사자의 다양한 유품들이에요~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 호국의 얼 함 등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집중조명 01. 먼 나라로 향합니다 (Heading to a far-away country)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6·25전쟁 참전 사망군인의 유해발굴과 송환이 있어

유엔군 유해 4천여 구와 공산군 유해 13만여 구가 이때 상호 송환되었다고 해요..

그렇지만 2000년에 이르기까지 유엔군, 중국군, 북한군의 유해발굴 사업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다가

국유단의 유해발굴감식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1만여 유해 중에는 유엔군이나 중국군, 북한군의 것으로 판명된

유해가 나타났다고 해요.. 2016년 현재 UN군 13구, 중국군이 564구, 북한군 712구의 유해가 발굴되었는데

모든 유해에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예우를 다했다고 해요..

2008년 한미유해발굴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16년 유해봉환행사를 진행새 10구의 유해를 미국에 인도헀고,

2014년부터는 중국정부와의 협약에 따라 중국군 유해 인도가 매년 이루어진다고 하네요..

북한군은 아직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못하고 경기도 파주에 적군묘지를 조성해 유해를 안치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UN 한국전쟁 기념 메달, 6·25전쟁 참전국 기념우표, 미국군 별문양 단추, 해병대 단추, 영국군 단추,

캐나다군 베레모표, 뉴질랜드군 단추 등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집중조명 02. 수십 년의 기다림 (Waiting for decades)

6·25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가족에 대한 기다림은 나라 안 모든 이들이 함께 겪는 아픔으로

사람들의 기다림, 슬픔,위로는 문학작품, 대중가요, 영화 등에 고스란히 배어있어

문학작품에는 이별, 공포, 갈등 등의 전쟁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고 해요~

까맣게 탄 땅을 의미하는 구상의 초토의 시, 전쟁터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의 충격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윤흥길의 장마 등이 대표작이고, 전쟁의 처절함과 이별의 그림움을 담은 현인의 전우야 잘자라,

허성희의 전우가 남긴 한마디 등은 가족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하네요..

전쟁은 영화에도 나타나느데 윤봉춘은 유엔군의 서울 수복작전과 북진을 기록한 서부전선을 만들었고,

가족들은 문학작품, 대중가요, 영화 등에 기대어 수십년을 기다림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6·25전쟁을 담은 대중 음악으로 아내의 노래, 임계신 전선 등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체험공간 굿!!

 

 

 

 

에필로그 - 마지막 한 사람까지

(Epilogue - Until the very last person is found)

국립서울현충원 경내 동편에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본관이 있는데

이곳에 아직도 전사자를 찾지 못한 지팡이를 의지한 가족이 새로 발견한 유해 중에 혈육이 있을까 해서 찾아온다고 해요..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가족의 소식을 듣고 싶은 심정이 전해지는군요.. 

건물 오른편에는 전 국토에서 찾아온 전사자 유해를 임시로 안치하는 국선제가 있는데

천정 높이까지 정중히 모셔진 1만여개의 함에는 번호만이 찾지 못한 이름을 대신해서 적혀있는데

6·25전사자의 유해와 유품이 가득하다고 하네요..

아직도 찾지못한 12만4천여명의 전사자를 찾기 위해 오늘도 깊은 산 골짜기와 능선을 걷는 국유단 장병들을 응원합니다~

 

 

 

 

경기도 고양시 관산동 심리산 유해발굴 당시 출토된 인식표에요..

아직 유가족을 찾지 못해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에서 소장중이라고 하네요..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 무한책임 의지를 실현하는 Vision과

유해발굴 사업의 의의를 살펴볼 수 있었어요~

 

 

 

 

퀴즈 이벤트와 해시태그 이벤트도 진행되어 전시회도 보고 퀴즈도 맞추고 선물까지 받을 수 있어 참 좋은듯^^

 

 

 

 

유해발굴 탐구 영역 퀴즈 이벤트에도 참가해보았어요~

누구나 쉽게 풀 수 있지만, 전시회를 꼭 보아야 풀 수 있는 문제였구요..

모든 문제 정답자 중 추첨을 통해 국유단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저도 살포시 기대해봅니다ㅋㅋ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7년만의 귀향 특별전시를 통해 67년만에 집으로 돌아온 전사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마음 아픈 6·25전쟁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오늘은 67년만의 귀향 전시를 보며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며 마지막 흔적을 확인하는 시간 어떠신가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지번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

[관람시간] 09:00 ~ 18:00 / 수요일, 토요일 09:00 ~ 21:00 / 입장시간 :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10대 가능 (인근 세종로 공용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2017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모니터요원으로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부터 보수를 지급 받아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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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세종로 82-1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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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귀여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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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에스델 ♥ 2017.06.13 10:12 신고  댓글주소  수 정/삭제  댓글쓰 기

    아직도 찾지 못한 전사자가
    12만 4천여명이나 되는군요.
    67년만의 귀향 전시품을 보면서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ㅠㅠ

  2. BlogIcon 신기한별 2017.06.14 07:22 신고  댓글주소  수 정/삭제  댓글쓰 기

    전시회는 끝났지만, 귀여운걸님의 생생한 현장 후기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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