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특별전!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3부 <고향, 꿈을 꾸다> 를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특별전은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생애와 활동,

독립 운동을 위해 애썼으나 귀국하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자취를 돌아보기 위해

9월 15일까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전시회로,

1부 1919년을 가슴에 품다, 2부 임시정부사람들 조국을 그리다, 3부 고향, 꿈을 꾸다 로 나뉘어 전시중인데요..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3부 고향, 꿈을 꾸다를 살펴볼까요?^^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3부 <고향, 꿈을 꾸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부출입구에서 관람할 수 있었어요~

 

 

 

 

관람의 이해를 도와주는 팜플렛은 필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삶의 터전을 나라 밖으로 옮긴 한인의 상당수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물심양면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했다고 해요~

중국, 러시아, 미주 등 세계 곳곳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그 후손들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그 시절 독립운동가들의 숨결과 그 후손들의 표정이 고스란한 김동우 사진작가의 사진작품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해외에서 세우고 지킨 나라 - 중국

독립운동가 이동녕의 말년 거주지,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들의 거주지이자 조선혁명당 본부였던 남목청 6호,

윤봉길 심문지 터, 독립운동가들이 묻힌 만국공묘, 김구 거주지 터, 윤봉길 의거지 훙커우 공원,

독립운동가 안태와 김근제가 묻힌 동정진망열사묘원,

오성륜 · 김익상 · 이종암이 일본군 육군대장을 저격하려한 황포탄 의거지를 살펴볼 수 있었어요~

 

 

 

 

해외에서 세우고 지킨 나라 - 인도

광복군과 영국군이 함께 훈련했던 레드포트를 3장의 사진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어요~

 

 

 

 

조국의 품에 다시 안기고 싶었던 이국땅의 꼬레아노들 - 멕시코

독립운동가 호근덕의 아들 빅토르 호 차,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관에 거주하는 한인 후손 라차로,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관, 독립운동가 김익주의 묘, 한인들을 태운 배가 정박했을 살리나 크루즈 해변,

독립운동가 이종오의 묘, 독립운동가 김익주의 후손 다빗킴, 독립군을 양성한 숭무학교 터,

독립운동가 이종오의 후손 율리세스 박 이, 한인 노동자들이 일했던 애니깽 농장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조국의 품에 다시 안기고 싶었던 이국땅의 꼬레아노들 - 쿠바

독립운동가 임천택의 딸 마르따 임 김, 독립운동가 이윤상의 딸 레오노르 이 박, 한인 후손 에스민다 아마도 킴 가족들,

쿠바 마나티항, 한인 이민 기념비, 라 꼬레아노 거리를 살펴볼 수 있었어요~

 

 

 

 

하와이에서 미국 본토로 퍼져나간 독립운동의 씨앗 - 미국

독립운동가 황기환의 묘, 독립군 육성에 헌신한 노백린 장군의 손녀 노영덕,

안창호와 이승만이 묵었던 리들리 버지스 호텔, 안창호의 막내아들 랄프안, 한인 비행사를 양성했던 윌로우스비행장 터,

한인국방경위대 훈련지, 독립운동가 김형순 등이 묻힌 리들리 공동묘지,

독립운동가들이 잠들어 있는 로즈데일 공동 묘지, 리들리 한인역기념각, 독립운동가 장인환 ·전명운 의거지,

3.1절 기념식 장소였던 뉴욕 타운홀, 청산리대첩 생존자 이우석의 딸 이춘덕,

이승만, 윤병구가 시어도어 루즈벨트를 만난 사가모어힐 저택, 대한인국민회 총회관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고려인들의 고향이자 무장투쟁의 최전선 - 러시아

김알렉산드라 처형지로 추정되는 죽음의 계곡, 독립운동가 잉ㄴ섭의 딸 스베를라나 슬로보치코바,

최재형 순국지로 추정되는 소비에트스카야 언덕, 대한신민단 단장 김규면의 묘,

자유시 참변 추모비, 독립운동가 강상진의 묘와 그의 손녀 스베틀라나,

가수 서태지가 러시아 최초 한인 정착지 지신허 마을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비,

자유시 참변 당시 독립군들이 익사한 제야강, 연해주 신한촌 기념비, 이범진 러시아공사의 묘 등을 살펴보았어요~

 

 

 

 

네덜란드

이준 열사 묘적지, 1907년에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기사의 집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새로이 가꾸는 삶의 터전 - 카자흐스탄

의병장 민긍호의 손녀 민 알렉산드라, 독립운동가 계봉우의 증손녀 계 이리나와 그의 딸,

15만원 탈취 의거의 주역 최봉설(최계립) 묘역, 독립운동가 황운정 묘,

독립운동가 계봉우의 아들 계학림, 우슈토베 바슈토베언덕의 고려인 무덤, 독립운동가 홍범도 묘역,

독립운동가 계봉우 묘, 바슈토베언덕의 고려인 무덤, 독립운동가 최봉설(최계립)의 손녀 최마야와 가족들을

사진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어요~

 

 

 

 

새로이 가꾸는 삶의 터전 -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노동영웅 김병화 박물관, 독립운동가 최호림의 묘, 조명희 문학기념관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2개국마다 묶어서 아늑한 공간에서 편히 앉아 시청각 자료를 살펴볼 수 있는 영상 코너도 마련되어 있었어요~

 

 

 

 

해외에서 세우고 지킨 나라 - 중국, 인도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에 직면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떠나 고난의 행군을 시작,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임시정부 사람들은 독립전쟁에 대비해 조직 통합을 위한 노력을 멈출 수 없어서,

임시정부는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까지 8년여의 이동 시기를 견뎌내고 1940년 충칭에 도착,

같은 해에 한국광복군을 창설했으며, 이후 영국군의 요청을 받아들여 광복군을 인도에 파견하는 등,

국내 진공작전에 대비하여 혹독한 훈련을 감내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조국의 품에 다시 안기고 싶었던 꼬레아노들 - 멕시코, 쿠바

1905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은 천여 명의 사람들이 멕시코로 향하는 배에 올랐는데

고국을 떠난 삶이었지만 더 나아진 것은 없었다고 해요..

1921년 이들 중 일부는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쿠바로 이주하게 되고,

이국땅에서 꼬레아노로 뿌리내리기 위해 육체적인 고통, 사무치는 외로움의 이중고를 오롯이 감당해야만 했던

시간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리운 가족을 부둥켜 안아볼 그날, 고향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일 그날을 꿈꾸며

쿠바의 한인들은 아낌없이 독립운동을 지원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쿠바 한인들의 이민사는 독립운동사의 한 장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살펴보는 시간이었어요!

 

 

 

 

하와이에서 미국 본토로 퍼져나간 독립운동의 씨앗 - 미국

하와이 이민으로 시작된 미국 한인사회는 해외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다고 해요~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 등지에서 안창호, 박용만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했고,

캘리포니아에서는 김형순, 김종림 등 성공한 사업가들이 막대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으며,

장인환, 전명운의 샌프란시스코 의거는 향후 무장독립투쟁에 큰 영향을 미쳤고,

뉴욕, 워싱턴 필라델피아 등에서도 이승만 서재필 등의 외교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어요~

 

 

 

 

고려인의 고향이자 무장투쟁의 최전선 - 러시아

러시아 연해주는 중앙아시아 등지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의 정착지이자 무장투쟁의 최전선이었고,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은 러시아의 한인들에게 아랫목이 되어준 곳으로 의미가 깊다고 해요~

또한 블라디보스토크 북쪽 약 112km 지점의 우수리스크 곳곳에 이상설 최재형의 흔적이 남아 있는가 하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도착한 하바롭스크에서는 한인사회당을 조작한

이동휘, 김 알렉산드라 등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을 마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러 독립운동가들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까지 광활한 러시아를 가로지르며 활발히 활동했음을

영상을 통해 감상할 수 있었어요~

 

 

 

 

새로이 가꾸는 삶의 터전 -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1937년 연해주에 살던 한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짐을 꾸려야 했고, 도착하기까지 목적지도 알 수 없었다고 해요~

화물칸에 실려 무려 7,000km를 이동한 끝에 도착한 곳은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였고,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혹독한 추위뿐이었음에도 살아야 했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한인들은 토굴을 파서 겨우 겨울을 났다고 해요..

그리고 봄이 되자 가장 먼저 학교를 세웠는데, 계봉우, 민긍호 가족, 이동휘 가족, 최봉설(최계립), 최재형 가족, 홍범도를

비롯한 수많은 한인들이 그곳에서 삶을 이어나갔고,

그 후손들은 독립유공자 후손회를 만들어 그 위대한 삶의 터전을 함께 가꾸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잃어버린 역사, 증거의 현장

작가의 글을 통해 망국 앞에 진실했던 몸부림을 통해 충분히 잃어버린 역사를 증거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김동우 사진작가가 역사의식을 갖고 해외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그들의 흔적을 찾아 사진으로 담는 의미 있는 작업을 진행한 특별전 3부..

중국, 러시아, 미주 등 해외로 떠나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흔적 및 그들의 후손 관련 사진과 영상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숨결과 그 후손들을 살펴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1부 1919년을 가슴에 품다 살펴보기 -> https://boyundesign.tistory.com/2744

 

[대한민국역사박물관]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1부 1919년을 가슴에 품다

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특별전!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1부 <1919년을 가슴에 품다> 를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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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2부 임시정부사람들 조국을 그리다 살펴보기 -> https://boyundesign.tistory.com/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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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시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2부 고향, 꿈을 꾸다 를 관람 어떠신가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지번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

[관람시간] 10:00 ~ 18:00 (수요일, 토요일 21:00까지 야간개장) / 입장시간 :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휴관일] 1월1일, 설날, 추석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인근 세종로 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2019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모니터요원으로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부터 보수를 지급 받아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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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특별전!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2부 <임시정부사람들 조국을 그리다> 를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특별전은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생애와 활동,

독립 운동을 위해 애썼으나 귀국하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자취를 돌아보기 위해

9월 15일까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전시회로,

1부 1919년을 가슴에 품다, 2부 임시정부사람들 조국을 그리다, 3부 고향, 꿈을 꾸다 로 나뉘어 전시중인데요..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2부 임시정부사람들 조국을 그리다를 살펴볼까요?^^

 

 

 

 

광화문역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2부 <임시정부사람들 조국을 그리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관람할 수 있었어요~

 

 

 

 

전시를 열며 -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국가기록원이 공동 개최하는

이번 특별전은 전시 장소에 따라 각각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그리고 해외에 남은 독립운동가의 자취라는세 가지 주제를 전시하고,

각 전시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다르지만, 모두 100년 전에 있었던 거시적인 역사의 이면에 주목한답니다!



 

 

독립을 향한 간절한 바람으로 이루어진 임시정부의 수립과 통합 과정,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던 임시정부 사람들의 삶을 상하이판 독립신문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전시로,

상하이판 독립신문은 1919년 8월 21일 항일독립투쟁의 거점이었던 상하이에서 창간된 임시정부 기관지로,

처음에는 한자 獨立(독립) 두 글자를 제호로 삼았고, 제22호부터는 獨立新聞(독립신문)으로 발행하다가

제175호부터 국문 독립신문으로 바꾸어 간행하였는데, 주3회 발간을 목표로 하였지만 점차 주기를 지키지 못하다가

1925년 11월 11일 제189호를 끝으로 폐간하였다고 하네요..

 

 

 

 

01 해외 독립운동의 거점, 상하이

20세기 초반의 중국 상하이는 서구 근대 문명을 수용하고 발전시킨 국제도시였다고 해요~ 

상하이가 중국 신해혁명의 거점이자 활동지였던 만큼 현지의 혁명가들 뿐 아니라, 

다수의 약소민족국가 망명가들과 혁명가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그 배경에는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하거나 거주하고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된 조계 구역이 있었다고 하네요!

한국인들에게도 상하이는 임시정부, 거류민단, 의열단 등의 단체들이 근거했던 

독립운동의 전초기지였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1920~30년대 초반 상하이의 모습이 나타나는 최신상해지도에요..

영미 공동조계지, 프랑스 조계지, 중국인들 지역인 성내 지역 등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었어요~

 

 

 

 

하나 된 뜻, 임시정부의 통합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시작한 1910년대 초부터

상하이로 건너가는 망명자 수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해서

1919년 3·1운동 이후로는 국내외에 다수의 정치조직체가 등장했는데,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국내의 한성정부, 상하이에 수립된 임시정부가 대표적인 예임을 알 수 있었어요!

이후, 하나의 통합된 임시정부를 세우려는 노력이 이어졌고,

같은 해 9월 11일 마침내 상하이에 본부를 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을 했다고 하네요!

 

 

 

 

국제연맹제출 조일관계사료집과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요..

1919년 7월에 설치한 임시사료편찬회는 약 50일 동안 한일관계사료집 전 4권을 간행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사료집을 국제연맹에 제출하여 나라 안팎에 3·1운동을 정확히 알리고자 하였다고 해요!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임시사료편찬회의 위원이었던 박은식이 집필한 역사서로,

갑신정변부터 1920년까지의 민족운동사를 주제별, 사건별로 분류하여 기술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02 상하이에서 살아간다는 것

상하이의 삶은 기후 적응부터 의식주 해결에 이르기까지 매순간이 위기이고 도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실력양성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생계와 독립운동을 위해 직업을 갖고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고 해요.. 

한편 이국에서의 기념일은 임시정부와 교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큰 행사이자, 

독립운동의 사명과 결의를 다지는 계기이기도 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직업군상 일러스트에요..

상하이의 한인의 일반적인 일자리는 영국인 전차회사 검표원(인스펙터)였고,

자영업으로는 다양한 잡화를 취급하는 상회에서 무역회사, 철공업, 인쇄업, 사진관에 이르기까지 업종이 다양한 편으로,

큰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나 개업의, 약재를 파는 약재상도 있었으며,

비록 소수이긴 했지만 공무원, 교원이나 대학교수, 배우와 같은 전문직업인도 등장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생계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기 위한 방편으로 직업을 가졌다고 하네요~

 

 

 

 

신념과 생계의 딜레마

3·1운동 직후부터 많은 한국인들이 상하이로 이주했고,

각자 생계를 위해 혹은 독립운동 자금을 위해 경제 활동을 해야 했는데,

1910년대에 전차회사 직원이나 자영업자 위주였던 한인 직업군은

1920ㄴ녀대 이후 점차 다양해져 의사, 무역업자, 철공업자, 인쇄업자 등으로 다양해졌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역사를 시각화된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임시정부의 하루 영상 부스에요..

 

 

 

 

임시정부의 하루

침구자라는 필명의 독립신문 기자는 지인을 통해 최근 임시정부를 향한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 듣게 되었고,

마침 이날은 상해일일신문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에 대한 취재기사가 실렸던 터라

일본기자 방문기에 대한 짧은 소회를 나눈 후 임시정부의 사보타주 라고까지 확대된

근래 세간의 불만을 주제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어요~

 

 

 

 

기념과 위로의 소임

임시정부는 국가적 차원의 기념행사를 공식적으로 개최하였는데,

신년축하회, 3·1기념일, 국치기념일, 개천절행사 등이 대표적이었다고 해요..

임시정부 요인이나 가족들의 돌잔치, 결혼, 장례, 회갑 같은 행사 또한

다 함께 모여 기념하고, 축하하고, 위로하는 모임이 되었는데

사적인 행사조차 서로를 위로하고 조국독립의 결의를 다지는 계기로 삼았던 것임을 알 수 있었어요!

 

 

 

 

독립신문사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 등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03 사람에 울고 웃다

상하이에서 출범한 임시정부를 모두가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요.. 

임시정부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임시정부의 활동에 대한 온갖 비난과 반대 의견을 전단에 담아 국내외에 배포하였지만,

정작 임시정부가 가장 경계했던 대상은 밀정이었다고 하네요~ 

조국을 배신한 밀정 활동은 임시정부와 요인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음을 알수 있었어요~

 

 

 

 

첨구자의 군소리

뾰족한 입이라는 뜻처럼 첨구자는 논설 성격의 코너인 바른소리, 곡중소 등의 필자들보다 더 날카로운 펜대로

임시정부와 요인들, 그리고 그 가족들과 심지어 상하이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향해

거침없는 독설을 쏟아낸 당대의 언론인이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광고로 본 독립신문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에는 어떤 광고가 실렸을까 궁금했는데,

사보 형태의 독립신문 자체 광고, 사람을 찾는 광고, 특별한 미담, 한인의 부고, 인성학교 학사일정 등

교육관련 소식, 그 외에 한인들이 운영하는 병원과 상점 홍보와 구인구직 소식이 자주 등장했네요..

 

 

 

 

적이 된 사람들

상하이에서 출범한 임시정부를 모두가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요..

임시정부를 반대하거나 인정하지 않았던 세력들은 임시정부에 대한 반대 의견을 국내외에 알리기도 했으나,

정작 임시정부가 가장 경계했던 대상은 밀정이었다고 해요!

조국을 배신한 밀정 활동은 임시정부와 요인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던 것이죠..

마땅히 응징해야 할 일곱 가지 적의 유형인 칠가살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아래와 같아요~

一. 적의 우두머리 / 二. 나라를 판 적 / 三. 일제 앞잡이 / 四. 친일 부호 / 五. 적의 관리가 된 자 / 六. 불량배 / 七. 모반자

 

 

 

 

임시정부의 여성들

임시정부에는 여성 직원이 있었는데, 첨구자의 군소리 기사에 분주한 임시정부의 일상을 관찰하던 중 눈길을 끌었던

2명의 여성 직원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는데, 상하이에서 독립운동가의 부인들은 삯바느질이나 하숙을 치면서

군자금을 보태는가 하면 도움이 필요한 임시정부 요인들을 한 가족처럼 돌보는 일에도 인색하지 않았으며,

국내에 잠입해 군자금을 모집하는 역할도 감당했는데, 그 과정에서 체포되어 어려움을 겪는 일도 있었다고 해요!

 

 

 

 

말하지 않아도 통했던 사람들

임시정부 사람들은 임시정부를 통해 대한민국이 독립국임을 증명하는 데에 헌신하였다고 해요..

결코 혼자가 아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세월이었죠..

임시정부의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조력자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였는데,

앞에 놓인 사진과 영상 속에 거듭 등장하는 낯익은 인물들과 함께 이름 없이, 대가 없이 그들을 도왔던 조력자들까지,

그들 모두가 임시정부 사람들이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에 도움을 준 중국인 조력자들,

윤봉길 의거에 도움을 준 중국인 왕바이슈 부부,

피난시절 임시정부 요인드로가 중국인 조력자들 사진도 감상했어요~

 

 

 

 

진정한 인류애를 실현한 외국인 독립운동가 조지 루이스 쇼에 대한 영상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독립운동가 김붕준이 망명 당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김붕준의 트렁크에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거 직후 주상하이일본영사관은 경찰부를 신설하고,

이어 방대한 규모의 특별고등경찰체제를 운영하였으며,

이후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떠나 1940년 9월 충칭에 자리 잡기까지 험난한 이동의 시기를 거치게 되었다고 하네요.. 

2부 <임시정부 사람들 조국을 그리다>를 통해서 상하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을 살펴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다음에는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3부 고향, 꿈을 꾸다 를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지난번에 소개한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1부 1919년을 가슴에 품다 살펴보기 -> https://boyundesign.tistory.com/2744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시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2부 임시정부사람들 조국을 그리다 를 관람 어떠신가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지번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

[관람시간] 10:00 ~ 18:00 (수요일, 토요일 21:00까지 야간개장) / 입장시간 :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휴관일] 1월1일, 설날, 추석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인근 세종로 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2019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모니터요원으로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부터 보수를 지급 받아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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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 정부수립 70년 기념 특별전!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를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70년 기념 특별전으로,

1945년 광복에서부터 1948년 정부 수립에 이르기까지 당시 사람들의 열망, 꿈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 정부수립 70년 기념 특별전!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를 살펴볼까요?^^

 

 

 

 

광화문역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 특별전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팜플렛부터 살펴보아야겠죠?ㅎㅎ

 

 

 

 

전시를 열며 (Opening Special Exhibition)

해방을 맞이한 나라 곳곳은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려는 움직임으로 꿈틀거렸는데,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우는 데에 힘을 쏟은 것은 비단 독립운동가, 정치 지도자만이 아니었고,

표현의 자유를 빼앗겼던 언론·출판계와 지식인들은 나라가 나아갈 길에 대해 진지한 목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하였다고 해요..

노동자와 농민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권리를 되찾고자 분투하였고,

여러 문화예술가와 단체 역시 새로운 사회를 향한 열정을 공유하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네요~

일반 대중에서 사회 지도층에 이르기까지 되찾은 나라의 주체가 된 한국인들은 스스로의 질서를 만들어 일어서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표출된 신념과 이념의 차이는 종종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다만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일어서고자 했던 사람들의 의지와 열기만은 하나같이 닮아 있었다는 점임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1948년 8월에 이루어진 대한민국 정부 수립도 바로 이 같은 에너지들이 모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죠~

 

 

 

 

1946 <신문학> 제2호에 실린 신석정의 꽃덤불 시를 비롯해

매일신보 1945년 8월 15일자 등을 살펴보았어요~

 

 

 

 

1부. 격동의 공간 한반도

해방은 한국인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억압하던 거대한 힘이 일시에 제거된 사건이죠..

그동안 억눌려왔던 정치적 에너지가 하루아침에 터져 나오면서 ‘해방 공간’이 된 한반도는 격동의 공간으로 변모하였는데,

한국인들의 사회 진출과 정치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음을 알 수 있었어요!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 각자의 정치 이념과 가치를 표현하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광장으로 모여들었다고 하네요~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미·소 중심의 냉전체제로 재편되었고,

이러한 흐름은 한반도에까지 미쳐 우리나라 내에서도 두 열강에 의한 서로 다른 정치체제가 양립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해방 직후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나뉘어졌죠~

1945년 9월 8일 38도선 남쪽에 미군이 진주하기 시작했고,

38도선 북쪽에서는 이보다 앞선 1945년 8월 26일 소련군이 평양에 진주하여,

남과 북에 자리잡은 서로 다른 정치체제는 사회문화적 이분화로 이어졌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영상을 통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1945년 9월 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 김구가 국내외 동포에게 전하는 글인 국내외 동포에게 고함,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원호회 설립을 알리고 지지와 찬조를 받기 위해 작성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원호회 설립 취의서,

조선건국동맹에서 발표한 성명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 이전에 임시정부 특파원 백창섭이 국내 동포들에게 발표한 독립 첫 인사,

임시정부 및 연합군 환영준비회 취지 전단도 살펴보았어요~

 

 

 

 

2부. 해방 이후

나라는 되찾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적지 않았다고 해요~ 

일제강점기 동안에 구축된 사회 기반시설들은 일제의 원활한 통치를 위한 것이었죠..

때문에 우리 실정에 맞도록 많은 것들이 조정되고 회복되어야 했는데요..

바로잡아야 할 것은 물질적인 시설만이 아니라, 일제 치하에서 상실했던 민족 정체성 또한 반드시 되찾아야 했죠..

일본식 성과 이름을 갖도록 강요한 창씨개명과 함께 빼앗겼던 우리말과 글, 역사 교육을 위한 노력들이 이어졌고,

부일 협력자에 대한 처리 또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였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인력거에요..

인력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894년으로 일본인 하나야마가 10대를 수입,

서울 시내 및 서울과 인천 간에 운행한 것이 최초라고 해요!

인력거는 서울 뿐만 아니라 지방 도시까지 보급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도 대중교통수단으로 이용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1940년대에 제작된 자동식 벽걸이 전화기 신기하네요!

송화기와 수화기가 분리되어 있고 회전식 다이얼이 달린 전화기로,

벽에 부착하여 사용하는 형태이고,

다이얼에는 숫자 0부터 9까지 10개의 홈이 있고

2부터 9까지 8개의 홈에는 빨간색으로 인쇄된 숫자 위쪽에 알파벳이 3자씩 인쇄되어 있었어요~

 

 

 

 

해방공간 엿보기 코너에요..

해방공간기에 발표된 소설 <효풍> <별을 헤다> <방아쇠> <역로> <도야지>를 각색한 미니어처 영상을 재미있게 살펴보았어요~

 

 

 

 

작은 신문사에서 다방, 기차, 동네어귀로 이어지는 K의 여정 속에서

여러 사람과 나눈 대화는 특별할 것도 없는 당시 사람들의 일상을 상징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 좋았어요^^

 

 

 

 

3부. 고단한 삶과 희망

나라를 되찾았지만 삶은 녹록하지 않았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미군정의 미숙한 통치로 사회는 여전히 불안했고, 경제적 조건은 나날이 악화되었는데요..

어려움이 가득한 가운데 해외에 머물던 많은 한국인들이 조국으로 돌아왔고, 이들은 희망을 가지고 나라의 앞길을 개척하고자 했다고 해요..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자각하고 더불어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생겨났고,

불안정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의 싹이 자라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어요~

 

 

 

 

해방을 기점으로 한반도 인구는 급격히 변화했다고 해요..

우선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들 대부분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일본, 중국, 소련 등 해외에 머물던 조선인들이 대거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는데,

이들은 새롭게 펼쳐질 조국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싸우고자 하는 열정을 품고 있었다고 하네요~

한편, 한반도의 38도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정치체제가 들어서면서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거처를 옮기는 내부 이동도 많아졌는데

이와 같은 이동은 남과 북 사이의 이질성 증대를 초래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나라를 되찾았지만 생활환경이 단번에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고 해요..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미군정의 정책으로 인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삶들이 급증했고,

미군정이 실시한 미곡 자유시장은 물가의 급속한 상승을 불러와 결국 미곡 통제령이 실시되기에 이르렀지만

이 역시 혼란을 개선하는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었고,

실업난과 인플레 등 경제 문제가 심화되었고,

가뭄과 콜레라 등 자연재해와 유행병은 민생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어요!

 

 

 

 

4부. 민의의 발산

해방이 되면서 일제강점기 동안 억눌렸던 사람들이 목소리가 여러 방식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고 해요.. 

사람들은 민족의 운명과 새롭게 만들어 갈 나라의 방향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매체들이 활용되었는데,

신문, 잡지, 단행본 등의 인쇄 매체는 대표적인 민의 발산의 도구로 기능했다고 해요!

여러 장르의 문학작품들도 당시 사회를 보는 나름의 시각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대중들에게 회자된 유행어 또한 시대적 상황을 대변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예술가들은 작품에 시대적 고민과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담아 표현했고, 이를 통해 대중들의 공감을 얻고자 했다고 하네요~

 

 

 

 

원고에 맞게 조판대에서 활자 하나하나를 활판(인쇄용 판)에 끼워 책, 신문, 팸플릿으로 인쇄해내는 기계에요~

다양한 크기의 활자를 만들기 위한 주모는 별도의 공간에 보관하고

추가적으로 활자가 필요할 때마다 해당 주모를 본떠 활자주조기를 이용해 다양한 크기의 활자를 만들어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인쇄를 위해 손 또는 기계를 이용해 활자를 원고대로 식자하는 사람들을 식자공이라고 하는데,

신문의 경우 기사 원고가 너무 길어 활판에 채울 수 없을 경우,

식자공들이 직접 기사를 줄여가며 활판의 크기에 맞는 분량으로 기사 원고를 재생산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었어요~

 

 

 

 

한글 관련 도서, 역사 책, 시집의 발간이 눈에 띄는 시기의 베스트셀러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이 가장 눈에 들어왔어요ㅎㅎ

 

 

 

 

그 때 그 시절 추억의 영화도 관람할 수 있었어요~ㅋㅋ

 

 

 

 

정치인, 운동가 못지 않게 시대를 고민한 이들이 있었는데, 바로 문화예술인이었어요!

당대 문화예술인들은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시대를 바라보았고,

자신들의 생각과 마음가짐을 예술 작품에 반영하고자 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전통을 살리면서도 현대적 가치를 접목한 문화예술을 선보이는가 하면,

남과 북으로 갈라진 나라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완성하여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는데,

개인의 차원을 넘어 단체를 결성하고 집단적으로 활동함으로써 예술적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이 시기 예술인들은 혼돈 속에서도 자기 자신은 물론 국가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월북을 감행한 사람도 있었고, 그 중 일부는 다시 월남하기도 했는데,

이 같은 정치적 상황은 문화예술인 개인의 삶 뿐만 아니라 분야 자체의 성쇠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었어요!

 

 

 

 

서울중앙방송 모니터 스피커, 미군용 라디오 수신기 R-100 / URR,

광복 이후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사용했던 온에어 램프,

스무고개 키박스, E.V. 다이나믹 마이크, 방송소설걸작집, 런던올림픽기행, 라디오 청취료 영수증, 방송청취시설 허가 통지서,

원반녹음재생기까지 흥미롭게 살펴보았어요~

 

 

 

 

5부. 정부수립, 그 후

일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지 3년 만에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분투한 결과였죠..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은 기미 3·1운동으로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세워진 민주독립국가였지만,

다만 남과 북은 하나의 나라가 되지 못했고 이는 추후의 과제로 남게 되었죠~

 

 

 

 

국민 총인구 변화 그래프와 인구관련 연표,

그리고 총인구조사신고서, 대한민국 제1회 총인구조사원 임명장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조선 최고 인민 회의 선거포스터,

면·리 인민 위원 선거를 독려하는 포스터도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었어요~

 

 

 

 

남과 북의 정치 풍경들도 이미지와 함께 살펴볼 수 있었어요~

 

 

 

 

콜라를 마시는 한국인, 설빔 입은 남매,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 서울시청 앞,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북창동 거리, 조선경비대, 전차를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1945년 광복에서부터 1948년 정부 수립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열망했던 새로운 사회의 모습과 이를 이룩하려 했던 의지와 노력을 생생히 살펴볼 수 있었어요!

당시 사람들의 열망, 꿈과 함께 70년 전 대한민국 정부의 출발점을 돌아보면서

2018년의 우리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어 의미있는 관람이었어요~

오늘은 12월2일까지 관람이 가능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시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를 관람해보는건 어떨까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지번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 미국대사관 바로 옆.

[관람시간] 10:00 ~ 18:00 (수요일, 토요일 21:00까지 야간개장) / 입장시간 :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가능

[휴관일] 1월1일, 설날, 추석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인근 세종로 공용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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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대한민국 휴대전화 30주년 기념 특별전! <세대를 넘어 마음을 연결하다>를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세대를 넘어 마음을 연결하다 전시는 대한민국 휴대전화 3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최중인 특별전시로,

시대별 히어로 휴대전화와 휴대전화 변천사, 미래의 통신, 모바일 오케스트라, 이동통신 역사 속 주요 기록,

홀로그램으로 보는 통신의 역사, 영상으로 만나는 모바일 히스토리까지 흥미롭고 알찬 시간이었는데요..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대한민국 휴대전화 30주년 기념 특별전 <세대를 넘어 마음을 연결하다> 를 살펴볼까요?^^

 

 

 

 

광화문역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

대한민국 휴대전화 30주년 기념 특별전 <세대를 넘어 마음을 연결하다>

 

 

 

 

전시장 입구에는 팜플렛이 마련되어 있어 전시 관람에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전시를 열며 (Opening Special Exhibition)

2018년 7월 1일은 우리나라에서 휴대전화 통신이 시작된 지 30주년이 된 날로,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이 1988년 7월 1일 아날로그 방식 기술을 이용해 휴대전화 서비스를 국내에 처음 선보인 이래로,

대한민국은 1996년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2002년 세계 최초 CDMA 2000 서비스 상용화, 2013년 세계 최초 LTE-A 상용화 등

세계 최초 신화를 쏟아내며 글로벌 IT 선도국으로서 이동통신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어 왔는데요..

휴대전화 서비스 첫 해에 784명에 불과했던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1991년 10만 명, 1999년 2,000만 명을 돌파,

2018년 4월 기준으로는 6,460만 627명에 달해 전체 인구수를 넘어선 지 오래라고 하네요..

1988년 서울 일부 지역의 전세 값과 맞먹는 초고가품이었던 휴대전화가 이제 전 국민의 생활 필수품이 된 사실이 흥미롭네요^^

 

 

 

 

그 시절, 우리들의 히어로

한국 최초에서 세계 최초까지 역사적으로 의미 있고,

영웅적인 활약을 펼친 주요한 휴대전화 기기들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1994년 8월 15일 오늘날 스마트폰의 시초인 PDA폰이 사상 최초로 미국에서 출시 되었고,

1999년 6월 국내 최초로 약 10곡 정도를 저장할 수 있는 32MB 메모리가 내장된 MP3를 재생할 수 있는 삼성전자츼 세계 최초 MP3폰 출시,

200개 한정판, 2001년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작은 휴대전화로 등재된 세계 최초 와치폰 등을 실물과 함께 살펴볼 수 있었어요!

 

 

 

 

세계 최초 A-GPS 상용화폰, 세계 최초 TFT-LCD 컬러 액정폰, 세계 최초 위성 DMB폰,

일명 가로본능으로 유명했던 세계 최초 스크린 회전폰부터

세계 최초 텔레매틱스폰, 세계 최초 3D LCD 카메라폰, 세계 최초 풀 터치폰인 프라다폰,

앱스토어를 무기로 갖추어 지구촌에 스마트폰 붐을 일으킨 최초의 iOS기반 스마트폰까지

시대별 히어로 휴대전화를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한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ㅎㅎ

 

 

 

 

모바일 열전

1세대 ~ 4세대 이동통신 발전과 함께한 지난 30년의 휴대전화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실물 단말들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AMPS 음성통화로 휴대전화 서비스 시대를 연 1세대..

 

 

 

 

음성, 문자, 저속인터넷까지 세계최초 CDMA상용화를 통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동한 2세대..

전송속도는 14.4 ~ 153.6kbps이고, 영화다운은 약 32시간이 걸렸다고 해요!

 

 

 

 

음성, 고속 인터넷, 영상통화, 로밍 확대까지 세계최초 CDMA 2000 1X EV - DO 상용화를 통해

손안의 인터넷과 스마트 혁명을 일으킨 3세대..

전송속도는 2 ~ 14.4Mbps이고, 영화다운은 19분으로 많이 빨라졌네요~

 

 

 

 

고음질 통화, 초고속 인터넷, 고화질 동영상 등 세계최초 LTE-A 상용화를 통해 초고속 무선통신 생활을 바꾼 4세대..

전송속도는 75Mbps ~ 1Gbps이고, 영화다운은 약 16초로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엄청난 속도!!

30년의 휴대전화 변천사를 실물로 만날 수 있어 무척 반가웠어요~!

 

 

 

 

미래의 시작, 5G

새로운 5G 통신 기술은 휴대전화만의 연결을 넘어,

집과 빌딩, 자동차 등 세상 모든 것을 연결할 것임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가상현실 홀로그램,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스마트팩토리 등 세계최초 5G 커넥티드카가 공개되었는데요..

복수의 5G 자율주행차 운행에 성공했으며,

전송속도는 20Gbps, 영화다운은 0.8초 예정이라니 눈 깜짝할 사이의 속도를 경험할 수 있을듯ㅋㅋ

5G와 함께 달라질 우리 삶의 가까운 미래상이 더욱 기대되네요^^

 

 

 

 

넓고 쾌적한 공간으로 편안하고 여유롭게 관람하기 좋았어요ㅎㅎ

 

 

 

 

모바일 오케스트라

제한된 소리만 낼 수 있었던 과거의 휴대전화들이 모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주하는 공간이에요~

 

 

 

 

추억의 폴더폰부터..

 

 

 

 

현재 진행형인 스마트폰을 비롯해 휴대폰 30대의 합연~~

1세대 휴대전화부터 최신 휴대전화들의 합창을 들을 수 있어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ㅋㅋ

 

 

 

 

벨소리 건반을 눌러 나만의 음악을 연주해 볼 수 있는 체험공간까지 굿!!

 

 

 

 

어서 와~ 이런 기록 처음이지?

30년 간의 이동통신 역사 속 주요 기록들을

인터랙티브 미디어월을 통해 흥미롭게 체험해 볼 수 있어 좋았어요^^

 

 

 

 

모바일 히스토리 1988 - 2018

TV 박스에 앉아 통신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영상으로 이동통신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어 좋더라구요ㅎㅎ

 

 

 

 

홀로그램으로 보는 통신의 역사

홀로그램 영상을 통해 통신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었어요ㅎㅎ

전기 기술이 발전하며 통신이 빠르게 발달해 무선전화, 위성전화가 탄생! 놀라운 발전을 이루어낸 것 같아요ㅋㅋ

이번 전시를 통해 음성통화만 가능하던 1G에서 시작하여 문자 송수신이 가능한 2G,

영상 시대를 연 3G 를 지나 안정적인 속도로 멀티미디어 이용이 가능한 4G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생활상을 주요 단말과 함께 살펴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 자율주행차, 로봇 등 그 연결의 범위가 '만물'로 무한 확대될 5G 시대의 미래상까지 살펴보는 풍성하고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오늘은 이달말까지만 전시되는 대한민국 휴대전화 30주년 기념 특별전을 관람해보는 건 어떨까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도로명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 미국대사관 바로 옆에 위치.

[관람시간] 10:00 ~ 18:00 (수요일, 토요일 21:00까지 야간개장) / 입장시간 :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휴관일] 1월1일, 설날, 추석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인근 세종로 공용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2018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모니터요원으로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부터 보수를 지급 받아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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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시!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를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는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개최되는 특별전으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기초해 관련 사료와 유품, 미술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는데요..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시를 살펴볼까요?^^

 

 

 

 

광화문역에서 도보 2분거리 미국대사관 옆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 특별전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

제가 관람을 했을때는 6월10일까지로 안내되어 있지만,

박물관 개관 이후로 처음으로 연장전시를 확정하여 7월3일까지 관람이 가능하답니다!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팜플렛은 필수죠~

 

 

 

 

전시를 열며 (Opening the exhibition)

제주4·3은 우리 현대사에서 6·25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많았던 비극적인 사건이고,

진상규명이 되기까지 반세기가 넘게 걸린 슬픈 역사이기도 한데요..

1980년대부터 민간차원에서 시작된 진상규명 노력은

2000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공포로 이어졌다고 하네요..

이를 통해 정부차원의 진상규명과 희생자·유족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2003년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되었고 2014년에는 4·3희생자 추념일이 지정되었음을 알 수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4·3에 대해서는 국민적 차원의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 사실인데요..

 70년이 지난 오늘, 당시의 피해자와 유족들은 이미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고 우리 곁에 남은 분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분들이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그동안의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고 볼 수 있겠네요..

 

 

 

 

1부. 저기에 있는 봄 (Part 1. Spring at hand)

제주 주민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기며 살아왔고,

그 강인함은 1932년 해녀항일운동에서도 드러났는데,

패망 직전 일제가 제주도에 군사기지를 건설하자 도민의 고초는 극에 달했다고 해요.. 

하지만 해방은 찾아왔고, 도민들과 제주 인민위원회는 새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봄은 멀지 않은 듯 했으나, 미군정에서 일제 경찰의 재임용, 부정부패 사건, 식량공출 등으로 도민들의 불만은 커져갔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노동자가 이용하였던 반합,

목재 시설 공사에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망치, 망치로 암반을 깨뜨릴 때 사용한 정,

목재와 목재 사이가 벌어지지 않게 연결시키는 도구인 꺾쇠, 땅굴에서 불을 밝히는 데 사용한 벽꽂이 등잔이 진열된 모습..

일제강점기 제주의 강한 저항이 대표적으로 드러난 것은 1932년에 일어난 해녀항일운동이라고 해요..

제주의 해녀들이 관제화된 해녀조합에 맞서 일어난 해녀항일운동은 청년, 농민들까지 합세하여

연인원 1만7천여명이 참여했던 제주 최대의 항일운동이자 우리나라 최대의 여성운동이었음을 알 수 있었어요..

 

 

 

 

미군정은 일제의 식민 통치 기구에서 일했던 관리와 경찰관들을 재임용했다고 해요..

광복이 되어 독립운동가들이 정국을 주도하는 것이 마땅했으나

친일파 관리와 경찰이 다시 전면에 나서면서 도민들의 감정을 자극했음을 알 수 있었어요..

 

 

 

 

2부. 흔들리는 섬 (Part 2. The island rocked by unrest)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경찰 발포로 민간인이 숨지자 제주 사회가 들끓기 시작했는데, 

발포에 대한 항의로 총파업이 시작되었고, 잇따른 경찰의 무차별 검속과 고문치사에 도민들은 분노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1948년 5·10총선거를 앞두고 남조선노동당 제주도당의 무장대는

4월 3일 ‘탄압에 대한 저항’,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등의 구호를 내걸고 무장봉기를 일으켰는데요..

평화협상이 진행되었지만, 결국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음을 알 수 있었어요~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영상 등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철 가시꽃, 죽창, 통곡 주제의 목판화 작품도 감상했어요~

 

 

 

 

당시 상황에 대해 미군정은 총파업의 원인을 무시한 채 '경찰 발포로 인한 도민의 반감을 남로당 제주위가 증폭시켰다'라고 사건을 분석했고,

경찰은 제주를 '붉은 섬'으로 규정하고 경찰 병력 400명을 급파했는데

1년간 무차별적으로 2,500명이 검속되었고 경찰과 서북청년회에 연행됐던

20대 청년 김용철, 양은하, 박행구가 고문으로 잇따라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극우 청년 단체인 서청은 좌익분자를 척결한다는 명목으로 폭행, 살인, 성폭력 등의 테러를 일삼아

경찰과 서청에 대한 도민들의 분노가 격화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3부. 행여 우리 여기 영영 머물지 몰라 (Part 3. If and when we are left here, lost forever)

무장대에 의한 선거 저지로 제주는 5·10총선거에서 선거 무효가 선언된 유일한 지역이었고,

1948년 8월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정통성에 도전으로 여겼다고 해요.. 

1948년 10월 해안에서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의 통행자를 무조건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제9연대의 포고문을 시작으로

11월에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무차별적인 진압작전이 전개되었는데요..

결국 어린이, 노인, 여성을 포함해 2만 5천~3만 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도피자가족 살상, 무장대의 살상행위, 은신자 총살, 함정토벌 등 무섭고 마음 아픈 이야기들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이 시기의 초토화작전은 중간산에 남은 사람들은 '폭도의 가담자'로 보고 쓸어 버린다'라는 것이었다니 충격적이네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총격과 방화 속에서 중산간마을의 95%가 불타 없어졌으며,

군경 토벌대의 명령에 따라 해안 마을로 강제 이주한 주민들도 무장대를 지원한 혐의가 있다는 자의적 판단 아래

재판도 없이 총살당하는 사건이 빈발해 이로 인해 입산을 택하는 피난민이 늘어났다고 하니 안타깝더라구요..

 

 

 

 

제주도지구 계엄선포에 관한 문서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1948년 11월 17일 공포되어 12월 31일까지 지속된 제주도 계엄령 선포 문서로

대통령과 국무위원 전원의 친필 서명이 들어가 있는데,

4·3의 전개과정에서 계엄령은 주민 희생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계엄령 선포 이후의 강경진압작전 시기에 4·3 희생자 대부분이 발생했으며

당시 계엄령은 '군대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하네요..

 

 

 

 

큰 넓은 궤-긴 손, 그 총알들 어디로 갔을까 등 캔버스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지슬 : 제주 4·3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작품이에요..

1948년 11월 중순부터 약 4개월간 진압군은 중산간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상했다고 해요..

진압군은 중산간마을 방화에 앞서 주민들에게 소개령을 내려 해안마을로 내려오도록 했으나,

일부 마을에서는 소개령이 전달되지 않았거나, 혹은 전달되기 전에 진압군이 들이닥쳐 집단희생을 당했다니 눈물이 나네요..

이때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 해안마을로 내려오지 못한 채 산간마을에 은신하다가 뒤늦게 진압군에게 붙잡혀 죽기도 했는데,

군·경에 의한 주민 집단희생의 실상은 14,000여 건에 이르는 피해신고서 내용과 500여 명의 증언을 통해 밝혀지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수많은 피해 마을 중 일부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었어요~

 

 

 

 

4·3 전개 과정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군법회의가 1948년과 1949년에 걸쳐 두 차례 실시되었는데,

대상이 된 민간인들은 주로 초토화작전의 집단 희생에서 죽음을 면한 중산간마을의 주민이거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한라산을 헤매다 '내려오면 살려준다'라는 군대의 선전에 따랐던 민간인들이라고 해요..

당시의 기록에서는 법률이 정한 정상적 절차를 밟았음을 증명하는 재판서, 공판조서 등의 소송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하루에 수백 명에 대한 심리가 진행되었고 사흘 만에 345명이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으며,

생존자들은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수감되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사건인것 같아요..

군법회의 대상자들은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분산 수감되었다가 제주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 군인들에게 총살되었고,

일부는 당시 행방불명되어 지금까지 생사를 모르고 있다고 하네요..

 

 

 

 

놋주걱, 주전자, 등잔, 깨진항아리, 고무신 등

제주 조천읍 선흘리 목시물굴에서 출토된 유류품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었어요~

 

 

 

 

REDCIDE2018 작품이에요..

붉은색 조명은 Red에 대한 컴플렉스로 모든 것을 판단하여 희생당한 사람들을 비추지만,

겹겹이 둘러싸여있는 껍질의 층을 깨고 뿜어나오는 밝은 빛을 통해 희망을 향한 염원을 표현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4부. 땅에 남은 흔적, 가슴에 남은 상처 (Part 4. Traces left on the ground, scars left in people's hearts)

4·3의 악몽은 연좌제로 대물림되었고, 마음껏 슬퍼할 수도,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고 해요..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40년이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진상규명 노력이 활기를 띠어

2000년에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공포되었고,

2014년에는 4·3희생자 추념일이 지정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무명천 할머니 걸개 그림이에요..

제주 4·3 후유장애인의 상징적 인물인 故진아영 할머니는 향년 90세가 되던 해인 2004년 9월 8일 세상을 떠났는데,

할머니의 생애를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뜻있는 분들이 모여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를 꾸렸다고 해요..

2008년 삶터 보존위원회 전시기획을 담당한 화가 양미경은

할머니의 고통스런 삶의 공간을 표현하고자 바느질 작업을 하였다고 하네요~

 

 

 

 

살의 정치사 이슬로 지다 캔버스에 아크릴 작품이에요..

396개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놀라웠어요!

 

 

 

 

잠들지 않는 남도, 약한것의 힘 등 살펴볼 부분이 많았어요..

 

 

 

 

제주 4·3 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고 하네요..

제주 4·3 특별법에 따라 2000년 9월부터 2003년 2월까지 2년 6개월 동안 진행된

제주 4·3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토대로 2003년 10월 15일 최종 확정된

제주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4·3 행방불명의 유해 발굴을 영상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어요~

 

 

 

 

전시장 앞에 마련된 제주 4·3 관련 도서를 감상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이에요..

헤드폰을 착용하고 4·3 홍보영상을 보고, 방명록도 남길 수 있었어요!

 

 

 

 

제주 4·3 관련 도서가 마련되어 있는 센스 굿!

 

 

 

 

너도 누군가의 꽃이었을테니 (Epilogue - You were once a flower to someone)

제주 하귀리 영모원의 추모 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뜻으로 이 빗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4·3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고 아픈 역사에 대한 치유와 화해의 길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과제인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제주 4·3이 제주만의 아픈 역사가 아닌 대한민국 역사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 같아 바람직한듯!

또한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인 제주 4·3을 통해 인권의 소중함을 깨닫고 평화와 상생의 길을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오늘은 7월3일까지 관람이 가능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시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를 관람해보는건 어떨까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지번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 미국대사관 바로 옆.

[관람시간] 10:00 ~ 18:00 (수요일, 토요일 21:00까지 야간개장) / 입장시간 :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가능

[휴관일] 1월1일, 설날, 추석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인근 세종로 공용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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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 한국 스포츠, 땀으로 쓴 역사를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한국 스포츠, 땀으로 쓴 역사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 개최를 계기로 마련된 특별전으로,

우리의 근현대사 속 스포츠의 역사, 국민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땀으로 쓴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알찬 시간이었는데요..

관람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생생한 전시 관람기를 살펴보려고 해요~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한국 스포츠, 땀으로 쓴 역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을 살펴볼까요?^^

 

 

 

 

광화문역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 특별기획전 한국 스포츠, 땀으로 쓴 역사..

 

전시를 열며 (Entering the Exhibition)

스포츠는 경쟁이라는 기본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격렬함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국제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나 그것을 보는 국민들은 스포츠 경기의 경쟁을 국가간 경쟁으로 생각하고,

스포츠 분야의 경쟁력을 곧 국가의 위상과 동일시하곤 하는데

19세기 말 도입된 한국의 근대 스포츠 또한 국가의 위상과 긴밀히 연결지어서 인식되었다고 하네요~

개항기의 스포츠는 국민들의 신체 능력을 길러서 부국강병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통치 목표와 관련되었고,

광복 이후의 스포츠는 다시 찾은 나라의 발전 번영을 위한 활동으로 여겨졌으며

20세기 후반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만큼 크게 발달한 한국의 스포츠는 대한민국 선진화의 증거로 인식된 것이라고 해요!

 

 

 

 

특별기획전 한국 스포츠, 땀으로 쓴 역사 (Korean Sports, a History Written in Sweat)

전시장 입구에는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팜플렛이 안내되어 있었어요~

어려운 시절을 살던 우리 국민들에게 스포츠는 울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리만족의 기회였다고 해요!

선수들은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하여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열심히 훈련하였고 좋은 성과를 내어 국민들을 열광시키고

땀으로 쓴 한국 스포츠의 역사는 그 자체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대한민국의 역사 그 자체였다고 하네요^^

가난했던 나라였던 대한민국은 1988년 하계올림픽 개최, 2002년 월드컵 개최에 이어 이번에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까지!

눈부시게 성장한 한국 스포츠는 이제 세계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할 만큼 발전을 거듭하였는데

 그 원동력은 우리 국민들의 한국 스포츠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니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어요ㅋㅋ

 

 

 

 

프롤로그 - 개항 이전 한국 스포츠 (Prologue - Korean Sports before Port-opening)

고대부터 우리 민족은 고유의 체육문화가 있었다고 해요~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 신에게 올리는 제천행사에서 가무를 즐기는 신체 활동이 있었고,

활쏘기, 말타기, 씨름, 수박, 차전놀이 등 무예와 관련된 신체단련을 위한 활동이 있었으며

이외에 다양한 전통 민속놀이는 한국인들의 체력 증진 및 협동심을 기르기도 했다는 사실을

단원풍속도첩 중 씨름도, 무예도보통지 권법편, 동국세시기, 셜매탄산양군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어요!

 

 

 

 

1. 근대 스포츠의 시작 (The Beginning of Modern Sports in Korea)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탈 속에서 조선은 문호를 개방했는데

이를 계기로 근대 스포츠가 도입되고 신체관념의 변화도 동반되었다고 해요~

 

 

 

 

조선, 대한제국의 정부는 체육을 장려함으로써 국민들의 몸과 마음을 굳건하게 만들고자 했는데

이를 위해 여러 법령들과 제도가 마련되었고, 학교에서는 체육이 교과목으로 지정되었다고 해요~

근대 운동회의 시작을 영상을 통해 살펴볼 수 있어 좋았어요!

 

 

 

 

가운데는 새끼줄을 동그랗게 말아 엮어 만든 축구공이라니 신기하죠?ㅎㅎ

우리나라에서 축구가 처음 도입되던 시기 가죽공은 구하기 힘들어

새끼줄을 둥글게 엮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네요! 

 

 

 

 

일제강점기의 체육은 국권 회복을 위한 도구로서 또 다른 사명을 갖게 되었는데

식민지적 상황은 조선인의 체육 활동에 많은 제한을 주었지만

3·1운동을 계기로 민족적 자주독립의식과 함께 조선인들의 체육활동도 활발해졌는데

그 결과 1920년 조선체육회가 창립되었다고 하네요..

 

 

 

 

일제의 탄압이 고조되던 상황 속에서도 체육은 조선인의 건강을 위해 기여했고,

조선인 지도자들은 스포츠가 조선의 국권회복을 위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장려했으며

스포츠는 나라를 잃었던 민족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다고 하네요^^

 

 

 

 

엄복동 자전거에요..

엄복동은 경기도 진위(현 평택시)의 자전거 가게에서 배달 점원으로 일하면서 자전거 타기를 익혀

나중에는 선수로 활동하기에 이르렀다니 대단하네요!

일제강점기 여러 자전거 대회에서 우승한 엄복동은 조선인들 사이에 매우 유명해졌고,

'하늘에 안창남, 땅에 엄복동' 이라는 유행어가 등장할 정도가 되었다고 하네요ㅋㅋ

 

 

 

 

웃터골운동장, 경성운동장, 장충체육관, 올림픽주경기장, 월드컵경기장까지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었어요!

 

 

 

 

2. 한국 스포츠의 전환과 도약 (The Transition and Takeoff of Korean Sports)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기쁨 속에 조선의 체육도 다시 시작되어

체육인들은 조선체육회를 재건했고, 조선올림픽위원회는 국제올림픽위원회에 가입했다고 해요~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전 개최된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는

한국 선수들이 Korea 라는 국적으로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ㅎㅎ

 

 

 

 

서윤복 보스턴마라톤 우승기사, 김용식 선수 축구화,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 동상, 야구화,

제14회 런던올림픽 공식포스터, 참가 선수명단, 한국 선수단 패넌트, ID카드, 축구 경기 안내서 등을 살펴보았어요~

 

 

 

 

체육인, 그들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영상관도 마련되어 있었어요~

 

 

 

 

월간 체육 창간호, 유도 창간호, 국민체조 LP음반, 남녀 중고등학교용 체육첩,

월간 배구계, 제35회 전국체육대회 임원장, 제48회 전국체육되회 동메달, 제65회 전국체육대회 기념패 등등..

 

 

 

 

1963년 1월 24일 스위스 로잔에서 올림픽 단일팀 출전 문제로 남북한 회담이 처음으로 개최되었고,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와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단일팀을 구성할 수 있었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 등 주요 국제종합경기대회 개막식에서 공동으로 입장하는 등의 성과도 있었다고 해요!

최근에는 한반도의 위기 상황으로 나북 체육교류가 정체되어 있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이 한반도의 평화와 체육교류를 위한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김일 선수가 WWA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미국의 압둘라 부차에 승리하며 부상으로 받은 챔피언 벨트에요!

 

 

 

 

선수들이 땀 흘려 이루어낸 역사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지요~

선수들의 땀이 서린 유물, 사진, 영상을 통해 그 당시 좋아하며 열광했던 선수를 떠올리며 추억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또한 선수들의 탁월한 기량 너머 있었던 스포츠 정신, 곧 화합과 평화의 정신을 함께 공유해보는 기회였어요ㅎㅎ

 

 

 

 

3. 한국 스포츠의 세계화 (The Globalization of Korean Sports)

1980년대 후반, 절차적 민주화의 성과를 얻은 대한민국은 같은 시기 스포츠 방면에서도 큰 활력을 얻었는데,

1988년 여름 제24회 서울올림픽 개최는 한국의 국가적 역량과 발전상을 전세계에 보여주었고,

이후 한국 스포츠의 발전은 여러 영역에서 나타났으나, 무엇보다 국제 대회 유치에 주목할 수 있답니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종목별 마스코트가 한자리에!

마스코트 핀 세트를 보니 어린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반가웠어요ㅋㅋ

이 외에 제24회 서울올림픽 공식음반 Hand in Hand,

대한민국선수단 및 관련인사 사인액자, 국가대표 재킷 등을 살펴보았어요!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2002 한일월드컵,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고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을 유치함으로써 국제 대회 유치 그랜드 슬림을 달성했다고 하네요~

 

 

 

 

국제 무대에서 활약한 선수들의 유니폼~

 

 

 

 

한국 선수들이 동계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것은 광복 이후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동계올림픽 대회로,

한국선수들은 이후 열린 국제 동계스포츠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고,

1992년 알베르빌동계올림픽에서는 사상 첫 메달을 획득했다고해요!

특히 한국은 쇼트트랙 종목에서 기량이 출중한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어 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이후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등 다른 종목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어

동계스포츠 강국임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다고 하네요ㅎㅎ

 

 

 

 

1923년 평양 대동강에서 전소선빙상경기대회가 열렸고,

1933년에는 전조선중등학교 빙상대회, 1935년에는 조선여자빙상경기대회 등이 개최되었다고 해요..

1936년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는

조선 선수들이 비록 일본대표로 참가했지만 준수한 성적으로 거두었고,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동계올림픽 대회는 광복 이후 조선인이 처음으로 참가한 동계올림픽 대회였으며

이후 대한민국은 각종 동계스포츠 대회 및 올림픽에 참가하여 점차 좋은 성적을 거두기 시작했다고 해요~

동계스포츠 및 올림픽에 대한 한국의 꾸준한 도전의 결과로 한국 선수들의 기량이 향상되었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의 개최도 가능해진것 같아요^^

 

 

 

 

제23회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기념 우표, 마스코트 배지, 마스코트 인형 수호랑 반다비까지 반가웠어요~

 

 

 

 

특별전 주제가 스포츠라 관람객이 직접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도록

전시장 앞에 체험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좋더라구요ㅎㅎ

 

 

 

 

알파인스키, 농구, 하키, 축구까지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 형식의 체험존 센스있는듯^^

 

 

 

 

3층 기획전시실에서 관람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오면 영상실이 있는데

편안히 앉아 지난 토크콘서트도 감상할 수 있어 즐거웠어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개최된 이번 특별전을 통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속 스포츠의 역사, 국민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한국 스포츠의 역사를

유물자료, 사진, 영상 등으로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어 알찬 시간이었어요!

아주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요했던 사건, 현상, 인물들의 이야기도 살펴볼 수 있어 뜻깊었구요..

우리나라 스포츠의 과거와 현재를 새롭게 보는 경험을 얻어 만족스러웠던 전시였어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지번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

[관람시간] 10:00 ~ 18:00 / 수요일, 토요일 10:00 ~ 21:00 / 입장시간 :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휴관일] 1월1일, 설날 당일, 추석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10대 가능 (인근 세종로 공용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2018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모니터요원으로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부터 보수를 지급 받아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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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최중인 1876년 개항 대륙에서 해양으로 주제의 특별전시를 소개해 드릴께요~

1876년 개항 대륙에서 해양으로 특별전시는 140년 전 조선이 맞은 개항을 좀 더 크고 넓은 시각에서 접근하여

오늘날 냉엄한 국제관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존립과 번영의 길은 무엇인지 묻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전시인데요..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시! 1876년 개항 대륙에서 해양으로를 살펴볼까요?^^

 

 

 

 

광화문역 2번출구로 나와 직진하다보면 역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3월26일까지 개최하는 특별전시! <1876년 개항 : 대륙에서 해양으로> 에요..

 

 

 

 

1876년 개항 대륙에서 해양으로 (The Opening of Korea in 1876 From Continent to Ocean)

전시장 입구에 있는 팜플렛을 보며 관람하면 전시를 감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보다 이해가 쉽답니다!

조선은 1876년 일본과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한 이래 서구 여러 나라와 일련의 근대적 외교관계를 맺었는데,

이 개항은 한편으로는 근대적 국제관계의 수립, 왕정체제의 개편, 국제교역 확대와 근대적 제도와 시설의 도입 등의

면에서 한국사에서 근대의 기점으로서 의의를 갖는 한편, 개항은 외압에 의해 불평등한 외교관계가 수립된 이후

조선이 열강의 각축을 거쳐 국권을 잃는 계기이기도 했다고 해요~

그럼, 140년 전 조선이 맞은 개항을 좀 더 크고 넓게 장기사적인 시각에서 접근한 특별전을 살펴볼께요ㅎㅎ

 

 

 

 

프롤로그 - 고지도를 통해서 본 두 개의 동아시아관

(Two Different Views of East Asia Revealed in Old Maps)

동아시아 국가들의 개항은 동아시아 국가들과 서양 제국이 만나게 된 계기였어요~

동아시아의 입장에서는 서구국가들의 방문을 경험한 사건이었고,

서양 제국들의 입장에서는 동아시아를 발견한 것으로 볼 수 있었는데요..

이러한 접촉을 통해서 양측의 상호 인식이 심화되었고 이어서 활발한 인적·물적 교류가 이루어졌지만,

이는 국가간의 충돌과 주권 침탈, 식민지화까지 동반한 과정임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천하도지도에요..

이 지도는 조선에서 제작된 서구식 세계지도로 서양선교사 알레니의 직방외기에 수록된 만국전도를 바탕으로

그려진 것으로, 여지도 라는 지도첩에 수록되어 있다고 해요~

천하도지도는 마테오리치의 곤여만국전도와 같이 지도의 중앙경선을 태평양 중앙에 둠으로써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를 중앙 부분에 배치하였는데,

이는 전통적인 중화사상을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유럽 중심의 구도를 태평양 중심의 구도로 바꾼 것이라고 하네요..

 

 

 

 

중국 중심 세계관 천하도에요..

천하도는 중화적 세계 인식에 기초하고 있어 중국은 중앙에 위치한 내대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원 테두리로 강조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천하도가 조선에서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중국만큼 부각되어 있지 않은데,

조선은 성리학을 수용하며 중국의 중화적 세계 인식도 함께 받아들였기 때문에

스스로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보다는 중국에 버금가는 문화국으로서의 소중화를 내세웠다니 안타깝네요..

 

 

 

 

1. 대륙체제 속 조선 (Joseon Amidst the Continental System)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조선과 같이 중국에 인접한 주변국은

조공-책봉 관계에 바탕한 사대 관계를 맺었다고 해요~

조선은 17세기 중반 명나라의 멸망 이후 중국을 제패한 만주족의 청나라에 대해서도 사대관계를 유지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중화문명의 계승자로 자임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일본에 대해서 조선은 교린의 원칙 하에 외교관계를 맺었는데,

임진왜란 · 정유재란 이후로 양국간 긴강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조선통신사의 파견 등 우호적인 교류 관계가 회복되었으나,

19세기 들어서는 조선통신사 파견이 중단되는 등 양국간 교류는 줄어들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좌측에 보이는 커다란 지도가 18세기에 제작된 세계지도인 천하지도에요..

중국의 13성과 조선, 류큐가 그려져 있는데 지도에서 류큐국은 조선에서 5,430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일본이 그려져 있지 않은 반면 류큐는 조선 영토의 절반에 가까운 크기로 묘사되어 있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이는 중국 중심의 중화체제를 반영한 것으로 조공국이 아니었던 일본은 지도에 빠져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이 외에 조선후기 대외관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인

조선 인조 이후의 대청 및 대일 관계의 교섭문서를 집대성한 책 동문휘고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좌측부터 순서대로 송원화동사합편강목, 사조선록, 이덕형 일행의 사행이에요..

송원화동사합편강목은 이항로를 개조로 하는 화서학파의 학자들이 편찬한 강목 형식의 한·중 합편 역사서로,

중국 송·원대의 역사와 고려 역사 일부를 합편해서 기술하고 있다고 해요~

과거 중국과 고려의 역사에 대해 주자학적 정통론을 통해 해석하려는 사관을 담고 있으며,

조선이 중화문명의 마지막 계승자라는 관점 또한 담고 있는데

대외적으로 위기를 겪던 조선의 상황에서 과거 역사 속의 정통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신감을 고취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사조선록은 중국 명나라 세종 때의 문신인 공용경의 조선 사행록으로,

1537년(중종 32) 황태자의 탄생 조서를 반포하기 위해 조선에 사신으로 왔을 때의

사행 절차 및 거리 풍경, 교류 내용 등을 기록하였다고 해요~

이덕형 일행의 사행은 조선 인조의 책봉을 요청하기 위해 1624년에 명나라에 파견된 이덕형 일행의

사신 행차를 담은 그림으로, 같은 내용을 담은 항해조천도를 후대에 묘사한 것으로 보이지만,

묘사 방법이나 등장인물의 숫자 등에서 약간의 차이가 보임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ㅎㅎ

 

 

 

 

통신사행렬도에요..

화면 영상을 통해 움직이는 모습으로 살펴볼 수 있어 생동감 가득 리얼해 좋더라구요~

1711년(숙종 37)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한 통신사 일행을 맞이하기 위하여 사전에 일본 측에서 그린 배치도로서

에도로 가는 행렬을 그린 그림이라고 해요..

이 행렬도의 전체 길이는 41.72m의 크기이며 299명의 통신사 행원과 1,800여 명의 일본 측 관계 무사와

호위 병졸, 짐꾼, 129필의 말이 묘사되어 있었어요!

 

 

 

 

2. 서세동점의 시대, 조선의 선택 (Western Powers' Eastward Expansion and Joseon's Choice)

서양인들이 교역, 선교 등을 목적으로 각지로 진출한 것은 15세기 이래의 일이지만,

이들 국가들이 동아시아 국가들에 접근한 것은 더 나중의 일이었고,

조선의 경우에는 중국, 일본보다도 늦게 서양의 문물을 접했다고 해요~

서양문물의 전파 이후, 천주교 탄압 등이 계기가 되어 일어난 서양과의 군사적 충돌은

조선의 대외관계를 더 경직되게 만들었으며 주변국에 비해 문호개방이 더 늦어지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하네요..

 

 

 

 

역사책에서 많이 보았던 그 척화비!

이 비석은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 당시에 비문을 짓고 신미양요 이후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에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데

이것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서양과의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공표한 것이라고 해요~

 

 

 

 

상단은 해국도지, 하단 좌측은 수역은파첩, 우측은 을병연행록이에요..

해국도지는 청나라 위원이 지은 세계지리서로 1844년에 간행되었고 조선에는 19세기 전반 연행사에 의해

유입되었다고 해요~ 지도와 지지로 나누어, 세계 각국의 지리, 역사를 소개하고

양이를 막기 위해 서양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하네요..

수역은파첩은 강세황이 1784년에 청나라 황제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사신으로 중국에 가면서 기록한 내용을 엮은 문헌으로,

직접 지은 시와 천주당을 방문한 기록, 서양의 건축과 회화를 본 후의 호기심과 놀라움에 대해 기록하였다고 하네요!

을병연행록은 홍대용이 쓴 중국 사행일기로 저자가 1756~1766년 청나라에 다녀 온 내용을 기록한 것이라고 해요~

천주당을 방문한 기록, 청나라 학자들과 교유하며 문답한 내용, 천문학, 음악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기록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에요~

상단은 어재연 시호교지로 조정에서 어재연에게 시호를 내리는 교지에요..

어재연은 1841년(헌종 7) 무과에 급제하고 1866년 병인양요가 발생하자 강화도 광성진을 수비하였고,

1871년(고종 8)에 신미양요가 발생하자 순무중군으로 강화도에 급파되었으나,

광성진에서 미군의 침략에 대항하여 싸우다 전사하였다고 해요..

조정에서는 병조판서겸삼군부지사에 추증하고 충장이라는 시호를 내리며 교지를 발급하였다고 하네요~

하단은 좌측부터 강화도를 소개하고 있는 미국 잡지, 운현서첩, 정한론의 내용이 그려진 일본 판화, 심교서류에요..

운현서첩은 김포 통진에 차려진 병영에서 기록한 병인양요의 일지에요..

1866년 프랑스는 선교사 처형을 구실로 군대를 파견, 그 해 9월 강화도에 상륙하였는데

조선군은 김포의 문수산성과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에 맞서 격퇴했다고 해요..

조선군이 왕명을 받아 출정한 상황, 프랑스군과의 접전 상황 등이 기록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심교서류는 1874년 8~10월에 걸친 한일외교문서에요.. 1873년 대원군이 하야하고 고종의 집정이 시작되자,

조선의 개방과 개항 외교를 추진해 오던 일본은 조선 국정을 내탐하기 위해 일본 외무성 관리인 모리야마시게루를

조선으로 파견하였다고 해요~ 이 문서를 통해 일본이 조선을 개항시키고자 하는 구체적인 절차 및 방법,

그리고 이 과정에서의 일본의 야심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어요~

 

 

 

 

청나라의 황준헌이 1880년경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비하기 위해

조선, 일본, 청나라가 취해야 할 외교정책을 기술한 책인 조선책략,

최익현의 상소문을 모아놓은 상소문집인 경록,

최익현의 척화와 관계되는 시문, 상소, 행적을 수록한 책으로 글과 함께 최익현의 행적과 관련된 삽도가 실린 일성록,

갑신정변에서 김옥균의 역할을 서술한 책인 갑신정변과 김옥균,

김옥균의 글과 행적 등을 모아 일본에서 발행한 책인 조선명사 김씨 언행록,

김옥균과 박영효의 유리건판(잘 닦은 유리판에 감광제를 발라 말린 필름이 발명되기 전까지 사용된 원판 사진),

1902년 당시 시국을 염려하는 최익현의 글과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는 최영조 글을 담은 최익현, 최영조 부자 간찰,

1866년 병인양요가 발생하자 위정척사적 입장에서 서양인들의 침범을 경계하기 위해 작성한 통문

개화와 위정척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에요~

 

 

 

 

병인양요 · 신미양요에서 충돌한 서양제국과 조선의 군사력을 한눈에 비교하기 쉽게 안내되어 있는 센스~!

그리고 좌측 하단의 무기는 불랑기포로 신미양요 때 조선군의 주력 화포였다고 해요!

이 포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1853년(철종 4)에 제작되었으며, 장인 김애립에 의해 제작된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불랑기포는 15세기경 포르투갈 등 서양에서 제작되어 중국 명나라에 전해졌는데,

우리나라에는 1563년 명문이 있는 불랑기포가 전해지고 있어 임진왜란 이전 조선에 전해진 것으로 보이네요..

 

 

 

 

3. 조선의 개항 (Joseon's Opening of Ports)

1873년 고종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하면서 조선의 대외정책에 변화가 왔는데

조선 내에서도 문호를 개방하자는 주장이 힘을 더해 갔기에

조선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1876년 일본과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했고,

이어서 미국, 영국 등 서양의 국가들과도 근대적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나

이들 조약들은 불평등 조약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는 사실ㅠㅠ

조약 체결 이후 조선은 외국에 시찰단을 파견하는 한편, 이어서 외국인 고문을 초빙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국제 질서에

맞춰 나가고자 했다고 해요~ 부산, 원산, 인천 등의 개항장에는 외국인들이 유입되고 해외 문물이 도입되었으며,

조선의 전통적 사회, 문화가 바뀌기 시작했는데 이 같은 변화는 다른 지역으로도 전파되었다고 하네요..

한성 등 도시에서는 교육, 의료 등 각종 신문물이 도입되면서 사람들의 삶도 변화하기 시작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조일수호조규 반대 상소에요..

조일수호조규를 반대하는 상소로, 조일수호조규 13관 내용 하나하나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요..

1866년 병인년의 상소는 위정척사 기조를 국가의 정책으로 채택하게 했으나,

더 활발했던 1876년 상소들은 조선 정부가 개항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전시장 내부 곳곳에는 차별화된 형식의 전시로 시선을 집중시켰어요~ㅎㅎ

 

 

 

 

조선 정부는 해외 각국에 시찰단을 파견함으로써 세계의 변화를 이해하고자 했는데,

일본에 수신사(1876~1882년 동안 3차 파견), 조사시찰단(신사유람단, 1881년), 청나라에 영선사(1881년),

미국에 보빙사(1883년)가 파견되었다고 해요~

해외에 시찰단으로 다녀온 인물들은 대개 조선의 근대화를 선도하는 개화 세력에 합류했다고 하네요..

각국과 근대적 조약을 체결한 이후는 외국인들이 조선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외교 관계를 수립한 국가의 외교관들이 조선에 파견되었고, 독일인 묄렌도르프, 미국인 오웬 대니 등과 같은 인물은

조선 정부의 외교 고문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기업가, 선교사 등이 조선에 들어와 각지에서 활동했다고해요!

 

 

 

 

일제강점기때 이동 수단이었던 인력거가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신문물 도입과 조선의 근대적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에요~

항구가 아닌 내륙에도 개시장, 개방지, 잡거지 등이 설정되었는데, 평양, 의주, 용암포, 서울 도성 밖의 용산, 양화진 등이

이에 해당했다고 해요~ 개시장은 외국인에게 상업 행위를 허용한 곳이고, 개방지에서는 자유로운 거주, 활동 허용,

잡거지에서는 외국인의 거류와 상업 활동이 허용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수도 한성의 중앙부에는 각종 신문물의 도입으로 도시 경관이 변하고 사람들의 생활도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외국의 공사관들 등 신식 건물이 건립되어 풍경을 바꿔놓아쏙, 서양의 식문화, 의문화 도입은 물론,

전차, 자동차 등 새로운 교통수단 도입, 전화, 전신 등의 새로운 통신수단도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조선 정부와 서양 선교사 등이 세운 신식 학교가 신교육을 하기 시작했다고 해요ㅎㅎ

 

 

 

 

조선후기 의료선교사들에 의해 사용되었던 의료 기구인 약저울, 약수저와 가위도 만나볼 수 있었어요ㅋㅋ

 

 

 

 

4. 새 국제관계 속의 조선 (Joseon Amidst New International Relations)

개항 이후 조선 정부의 개화노력은 내정 문제로 위기에 처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구식 군인의 임오군란을 진압한 청군은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파도 축출했고, 그후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는데 1880년대에 청나라는 조선을 전통적 주종관계가 아니라 실질적 지배종속 관계 아래 두고자 했지만,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은 계속되었고, 그것은 1890년대 전반 청나라와 일본의 대립으로 압축되었므며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계기고 조선에 온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가 충돌한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여

조선에 대한 중국의 전통적 영향력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해요~

 

 

 

 

19세기말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을 한눈에 살펴보기 좋게 되어 있어 이해가 쏙쏙 가더라구요~

 

 

 

 

장흥부에서 작성한 동학농민군 진압 내용 등을 기록한 문서인 동학란 토벌 전말,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일본에서 발행한 책자인 조선사건,

동학 2대 교조 최시형의 승인을 의미하는 북접법헌 날인과 손병화의 용담연원이 있는 동학 임명장이에요..

 

 

 

 

청일전쟁에 따른 국제질서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에요~

1890년대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을 둘러싸고 정면충돌했죠~

내정 개혁에 실패한 조선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는데 그를 계기로 조선에 온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가 충돌해

청일전쟁이 발발 일본이 승리했고,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던 청나라가 주변국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조선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고 해요~

아울러 조선을 둘러싼 국제관계도 근본적으로 바뀌었는데 이후 조선에 미치는 청나라의 영향력은 퇴조하고,

일본의 영향력이 강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에필로그 - 조선의 위기 (Joseon's Crisis)

청일전쟁의 결과 전통적 중화질서가 무너졌고, 일본의 지원을 받은 조선의 개화파 정부는 갑오·을미개혁을 실시하여,

조선사회를 근대화시키고자 했다고 해요~ 신분제와 과거제가 폐지되고 왕권을 제한하는 재정개혁도 시도되었죠~

건양이라는 조선 고유의 연호를 사용한 것과 태양력을 채택한 것은

전통적 중화질서에서 조선이 벗어나기 시작한 증거로 볼 수 있는데요..

개화파를 계승한 독립협회는 한반도에서 청나라의 종주권이 소멸한 것을 기념해 독립문을 세웠다고 하네요..

한편 이들 개혁에 포함된 단발령 등은 국내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외세에 의존한 개혁이라는 한계를 보였다고해요..

이제 한반도에서는 러시아와 일본이 각축을 벌이게 되었는데 그와 맞물려 조선의 내정도 크게 동요하여

조선은 새로운 위기 국면에 들어섰죠.. 조선은 국가의 존립을 위협받기에 이르렀지만,

새로운 역사적 과제를 짊어질 새 세대가 성장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1894년 음력 12월 12일 제정 · 선포된 한국 최초의 근대적 헌법인 홍범14조,

관보에 실린 1895년 9월 9일 선포된 태양력 사용 법령인 관보 호외,

조선이 청나라의 영향으로부터 독립했음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독립문 모형,

1896년 창간되었던 최초의 민간 신문으로 국민계몽과 문명개화운동의 확산과 추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독립신문

까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어 알차고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조선은 개항으로 전통적인 패권국 중국의 문명과 안보의 틀을 벗어나,

열강이 이합집산하고 각추을 벌이는 만국공법의 세계에 진입했는데

이는 조선에게는 국체의 보존이 위협받는 위기임과 동시에 근대국가로서의 성공적 변신의 기회이기도 했지만,

100여년 전 이 도전에 적절히 응전하지 못한 조선이 망국의 운명을 맞았음을 상기하며

오늘날 냉엄한 국제관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존립과 번영의 길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전시였어요~

오늘은 3월26일까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되는 특별전시를 관람하며 역사속으로 떠나보는건 어떨까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지번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로 나와 직진하다보면 우측에 위치. 역에서 도보 2분거리.

[개장시간] 09:00 ~ 18:00 (입장시간 17:00까지) / 수요일, 토요일 09:00 ~ 21:00 (입장시간 20:00까지) / 설날, 추석 휴관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10대 주차 가능 (인근 공용주차장인 세종로 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2017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모니터요원으로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부터 보수를 지급 받아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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