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대한민국 휴대전화 30주년 기념 특별전! <세대를 넘어 마음을 연결하다>를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세대를 넘어 마음을 연결하다 전시는 대한민국 휴대전화 3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최중인 특별전시로,

시대별 히어로 휴대전화와 휴대전화 변천사, 미래의 통신, 모바일 오케스트라, 이동통신 역사 속 주요 기록,

홀로그램으로 보는 통신의 역사, 영상으로 만나는 모바일 히스토리까지 흥미롭고 알찬 시간이었는데요..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대한민국 휴대전화 30주년 기념 특별전 <세대를 넘어 마음을 연결하다> 를 살펴볼까요?^^

 

 

 

 

광화문역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

대한민국 휴대전화 30주년 기념 특별전 <세대를 넘어 마음을 연결하다>

 

 

 

 

전시장 입구에는 팜플렛이 마련되어 있어 전시 관람에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전시를 열며 (Opening Special Exhibition)

2018년 7월 1일은 우리나라에서 휴대전화 통신이 시작된 지 30주년이 된 날로,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이 1988년 7월 1일 아날로그 방식 기술을 이용해 휴대전화 서비스를 국내에 처음 선보인 이래로,

대한민국은 1996년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2002년 세계 최초 CDMA 2000 서비스 상용화, 2013년 세계 최초 LTE-A 상용화 등

세계 최초 신화를 쏟아내며 글로벌 IT 선도국으로서 이동통신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어 왔는데요..

휴대전화 서비스 첫 해에 784명에 불과했던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1991년 10만 명, 1999년 2,000만 명을 돌파,

2018년 4월 기준으로는 6,460만 627명에 달해 전체 인구수를 넘어선 지 오래라고 하네요..

1988년 서울 일부 지역의 전세 값과 맞먹는 초고가품이었던 휴대전화가 이제 전 국민의 생활 필수품이 된 사실이 흥미롭네요^^

 

 

 

 

그 시절, 우리들의 히어로

한국 최초에서 세계 최초까지 역사적으로 의미 있고,

영웅적인 활약을 펼친 주요한 휴대전화 기기들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1994년 8월 15일 오늘날 스마트폰의 시초인 PDA폰이 사상 최초로 미국에서 출시 되었고,

1999년 6월 국내 최초로 약 10곡 정도를 저장할 수 있는 32MB 메모리가 내장된 MP3를 재생할 수 있는 삼성전자츼 세계 최초 MP3폰 출시,

200개 한정판, 2001년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작은 휴대전화로 등재된 세계 최초 와치폰 등을 실물과 함께 살펴볼 수 있었어요!

 

 

 

 

세계 최초 A-GPS 상용화폰, 세계 최초 TFT-LCD 컬러 액정폰, 세계 최초 위성 DMB폰,

일명 가로본능으로 유명했던 세계 최초 스크린 회전폰부터

세계 최초 텔레매틱스폰, 세계 최초 3D LCD 카메라폰, 세계 최초 풀 터치폰인 프라다폰,

앱스토어를 무기로 갖추어 지구촌에 스마트폰 붐을 일으킨 최초의 iOS기반 스마트폰까지

시대별 히어로 휴대전화를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한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ㅎㅎ

 

 

 

 

모바일 열전

1세대 ~ 4세대 이동통신 발전과 함께한 지난 30년의 휴대전화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실물 단말들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AMPS 음성통화로 휴대전화 서비스 시대를 연 1세대..

 

 

 

 

음성, 문자, 저속인터넷까지 세계최초 CDMA상용화를 통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동한 2세대..

전송속도는 14.4 ~ 153.6kbps이고, 영화다운은 약 32시간이 걸렸다고 해요!

 

 

 

 

음성, 고속 인터넷, 영상통화, 로밍 확대까지 세계최초 CDMA 2000 1X EV - DO 상용화를 통해

손안의 인터넷과 스마트 혁명을 일으킨 3세대..

전송속도는 2 ~ 14.4Mbps이고, 영화다운은 19분으로 많이 빨라졌네요~

 

 

 

 

고음질 통화, 초고속 인터넷, 고화질 동영상 등 세계최초 LTE-A 상용화를 통해 초고속 무선통신 생활을 바꾼 4세대..

전송속도는 75Mbps ~ 1Gbps이고, 영화다운은 약 16초로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엄청난 속도!!

30년의 휴대전화 변천사를 실물로 만날 수 있어 무척 반가웠어요~!

 

 

 

 

미래의 시작, 5G

새로운 5G 통신 기술은 휴대전화만의 연결을 넘어,

집과 빌딩, 자동차 등 세상 모든 것을 연결할 것임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가상현실 홀로그램,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스마트팩토리 등 세계최초 5G 커넥티드카가 공개되었는데요..

복수의 5G 자율주행차 운행에 성공했으며,

전송속도는 20Gbps, 영화다운은 0.8초 예정이라니 눈 깜짝할 사이의 속도를 경험할 수 있을듯ㅋㅋ

5G와 함께 달라질 우리 삶의 가까운 미래상이 더욱 기대되네요^^

 

 

 

 

넓고 쾌적한 공간으로 편안하고 여유롭게 관람하기 좋았어요ㅎㅎ

 

 

 

 

모바일 오케스트라

제한된 소리만 낼 수 있었던 과거의 휴대전화들이 모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주하는 공간이에요~

 

 

 

 

추억의 폴더폰부터..

 

 

 

 

현재 진행형인 스마트폰을 비롯해 휴대폰 30대의 합연~~

1세대 휴대전화부터 최신 휴대전화들의 합창을 들을 수 있어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ㅋㅋ

 

 

 

 

벨소리 건반을 눌러 나만의 음악을 연주해 볼 수 있는 체험공간까지 굿!!

 

 

 

 

어서 와~ 이런 기록 처음이지?

30년 간의 이동통신 역사 속 주요 기록들을

인터랙티브 미디어월을 통해 흥미롭게 체험해 볼 수 있어 좋았어요^^

 

 

 

 

모바일 히스토리 1988 - 2018

TV 박스에 앉아 통신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영상으로 이동통신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어 좋더라구요ㅎㅎ

 

 

 

 

홀로그램으로 보는 통신의 역사

홀로그램 영상을 통해 통신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었어요ㅎㅎ

전기 기술이 발전하며 통신이 빠르게 발달해 무선전화, 위성전화가 탄생! 놀라운 발전을 이루어낸 것 같아요ㅋㅋ

이번 전시를 통해 음성통화만 가능하던 1G에서 시작하여 문자 송수신이 가능한 2G,

영상 시대를 연 3G 를 지나 안정적인 속도로 멀티미디어 이용이 가능한 4G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생활상을 주요 단말과 함께 살펴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 자율주행차, 로봇 등 그 연결의 범위가 '만물'로 무한 확대될 5G 시대의 미래상까지 살펴보는 풍성하고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오늘은 이달말까지만 전시되는 대한민국 휴대전화 30주년 기념 특별전을 관람해보는 건 어떨까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도로명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 미국대사관 바로 옆에 위치.

[관람시간] 10:00 ~ 18:00 (수요일, 토요일 21:00까지 야간개장) / 입장시간 :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휴관일] 1월1일, 설날, 추석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인근 세종로 공용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2018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모니터요원으로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부터 보수를 지급 받아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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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세종로 82-1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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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시!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를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는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개최되는 특별전으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기초해 관련 사료와 유품, 미술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는데요..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시를 살펴볼까요?^^

 

 

 

 

광화문역에서 도보 2분거리 미국대사관 옆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 특별전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

제가 관람을 했을때는 6월10일까지로 안내되어 있지만,

박물관 개관 이후로 처음으로 연장전시를 확정하여 7월3일까지 관람이 가능하답니다!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팜플렛은 필수죠~

 

 

 

 

전시를 열며 (Opening the exhibition)

제주4·3은 우리 현대사에서 6·25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많았던 비극적인 사건이고,

진상규명이 되기까지 반세기가 넘게 걸린 슬픈 역사이기도 한데요..

1980년대부터 민간차원에서 시작된 진상규명 노력은

2000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공포로 이어졌다고 하네요..

이를 통해 정부차원의 진상규명과 희생자·유족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2003년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되었고 2014년에는 4·3희생자 추념일이 지정되었음을 알 수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4·3에 대해서는 국민적 차원의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 사실인데요..

 70년이 지난 오늘, 당시의 피해자와 유족들은 이미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고 우리 곁에 남은 분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분들이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그동안의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고 볼 수 있겠네요..

 

 

 

 

1부. 저기에 있는 봄 (Part 1. Spring at hand)

제주 주민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기며 살아왔고,

그 강인함은 1932년 해녀항일운동에서도 드러났는데,

패망 직전 일제가 제주도에 군사기지를 건설하자 도민의 고초는 극에 달했다고 해요.. 

하지만 해방은 찾아왔고, 도민들과 제주 인민위원회는 새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봄은 멀지 않은 듯 했으나, 미군정에서 일제 경찰의 재임용, 부정부패 사건, 식량공출 등으로 도민들의 불만은 커져갔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노동자가 이용하였던 반합,

목재 시설 공사에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망치, 망치로 암반을 깨뜨릴 때 사용한 정,

목재와 목재 사이가 벌어지지 않게 연결시키는 도구인 꺾쇠, 땅굴에서 불을 밝히는 데 사용한 벽꽂이 등잔이 진열된 모습..

일제강점기 제주의 강한 저항이 대표적으로 드러난 것은 1932년에 일어난 해녀항일운동이라고 해요..

제주의 해녀들이 관제화된 해녀조합에 맞서 일어난 해녀항일운동은 청년, 농민들까지 합세하여

연인원 1만7천여명이 참여했던 제주 최대의 항일운동이자 우리나라 최대의 여성운동이었음을 알 수 있었어요..

 

 

 

 

미군정은 일제의 식민 통치 기구에서 일했던 관리와 경찰관들을 재임용했다고 해요..

광복이 되어 독립운동가들이 정국을 주도하는 것이 마땅했으나

친일파 관리와 경찰이 다시 전면에 나서면서 도민들의 감정을 자극했음을 알 수 있었어요..

 

 

 

 

2부. 흔들리는 섬 (Part 2. The island rocked by unrest)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경찰 발포로 민간인이 숨지자 제주 사회가 들끓기 시작했는데, 

발포에 대한 항의로 총파업이 시작되었고, 잇따른 경찰의 무차별 검속과 고문치사에 도민들은 분노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1948년 5·10총선거를 앞두고 남조선노동당 제주도당의 무장대는

4월 3일 ‘탄압에 대한 저항’,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등의 구호를 내걸고 무장봉기를 일으켰는데요..

평화협상이 진행되었지만, 결국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음을 알 수 있었어요~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영상 등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철 가시꽃, 죽창, 통곡 주제의 목판화 작품도 감상했어요~

 

 

 

 

당시 상황에 대해 미군정은 총파업의 원인을 무시한 채 '경찰 발포로 인한 도민의 반감을 남로당 제주위가 증폭시켰다'라고 사건을 분석했고,

경찰은 제주를 '붉은 섬'으로 규정하고 경찰 병력 400명을 급파했는데

1년간 무차별적으로 2,500명이 검속되었고 경찰과 서북청년회에 연행됐던

20대 청년 김용철, 양은하, 박행구가 고문으로 잇따라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극우 청년 단체인 서청은 좌익분자를 척결한다는 명목으로 폭행, 살인, 성폭력 등의 테러를 일삼아

경찰과 서청에 대한 도민들의 분노가 격화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3부. 행여 우리 여기 영영 머물지 몰라 (Part 3. If and when we are left here, lost forever)

무장대에 의한 선거 저지로 제주는 5·10총선거에서 선거 무효가 선언된 유일한 지역이었고,

1948년 8월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정통성에 도전으로 여겼다고 해요.. 

1948년 10월 해안에서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의 통행자를 무조건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제9연대의 포고문을 시작으로

11월에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무차별적인 진압작전이 전개되었는데요..

결국 어린이, 노인, 여성을 포함해 2만 5천~3만 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도피자가족 살상, 무장대의 살상행위, 은신자 총살, 함정토벌 등 무섭고 마음 아픈 이야기들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이 시기의 초토화작전은 중간산에 남은 사람들은 '폭도의 가담자'로 보고 쓸어 버린다'라는 것이었다니 충격적이네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총격과 방화 속에서 중산간마을의 95%가 불타 없어졌으며,

군경 토벌대의 명령에 따라 해안 마을로 강제 이주한 주민들도 무장대를 지원한 혐의가 있다는 자의적 판단 아래

재판도 없이 총살당하는 사건이 빈발해 이로 인해 입산을 택하는 피난민이 늘어났다고 하니 안타깝더라구요..

 

 

 

 

제주도지구 계엄선포에 관한 문서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1948년 11월 17일 공포되어 12월 31일까지 지속된 제주도 계엄령 선포 문서로

대통령과 국무위원 전원의 친필 서명이 들어가 있는데,

4·3의 전개과정에서 계엄령은 주민 희생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계엄령 선포 이후의 강경진압작전 시기에 4·3 희생자 대부분이 발생했으며

당시 계엄령은 '군대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하네요..

 

 

 

 

큰 넓은 궤-긴 손, 그 총알들 어디로 갔을까 등 캔버스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지슬 : 제주 4·3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작품이에요..

1948년 11월 중순부터 약 4개월간 진압군은 중산간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상했다고 해요..

진압군은 중산간마을 방화에 앞서 주민들에게 소개령을 내려 해안마을로 내려오도록 했으나,

일부 마을에서는 소개령이 전달되지 않았거나, 혹은 전달되기 전에 진압군이 들이닥쳐 집단희생을 당했다니 눈물이 나네요..

이때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 해안마을로 내려오지 못한 채 산간마을에 은신하다가 뒤늦게 진압군에게 붙잡혀 죽기도 했는데,

군·경에 의한 주민 집단희생의 실상은 14,000여 건에 이르는 피해신고서 내용과 500여 명의 증언을 통해 밝혀지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수많은 피해 마을 중 일부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었어요~

 

 

 

 

4·3 전개 과정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군법회의가 1948년과 1949년에 걸쳐 두 차례 실시되었는데,

대상이 된 민간인들은 주로 초토화작전의 집단 희생에서 죽음을 면한 중산간마을의 주민이거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한라산을 헤매다 '내려오면 살려준다'라는 군대의 선전에 따랐던 민간인들이라고 해요..

당시의 기록에서는 법률이 정한 정상적 절차를 밟았음을 증명하는 재판서, 공판조서 등의 소송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하루에 수백 명에 대한 심리가 진행되었고 사흘 만에 345명이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으며,

생존자들은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수감되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사건인것 같아요..

군법회의 대상자들은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분산 수감되었다가 제주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 군인들에게 총살되었고,

일부는 당시 행방불명되어 지금까지 생사를 모르고 있다고 하네요..

 

 

 

 

놋주걱, 주전자, 등잔, 깨진항아리, 고무신 등

제주 조천읍 선흘리 목시물굴에서 출토된 유류품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었어요~

 

 

 

 

REDCIDE2018 작품이에요..

붉은색 조명은 Red에 대한 컴플렉스로 모든 것을 판단하여 희생당한 사람들을 비추지만,

겹겹이 둘러싸여있는 껍질의 층을 깨고 뿜어나오는 밝은 빛을 통해 희망을 향한 염원을 표현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4부. 땅에 남은 흔적, 가슴에 남은 상처 (Part 4. Traces left on the ground, scars left in people's hearts)

4·3의 악몽은 연좌제로 대물림되었고, 마음껏 슬퍼할 수도,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고 해요..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40년이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진상규명 노력이 활기를 띠어

2000년에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공포되었고,

2014년에는 4·3희생자 추념일이 지정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무명천 할머니 걸개 그림이에요..

제주 4·3 후유장애인의 상징적 인물인 故진아영 할머니는 향년 90세가 되던 해인 2004년 9월 8일 세상을 떠났는데,

할머니의 생애를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뜻있는 분들이 모여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를 꾸렸다고 해요..

2008년 삶터 보존위원회 전시기획을 담당한 화가 양미경은

할머니의 고통스런 삶의 공간을 표현하고자 바느질 작업을 하였다고 하네요~

 

 

 

 

살의 정치사 이슬로 지다 캔버스에 아크릴 작품이에요..

396개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놀라웠어요!

 

 

 

 

잠들지 않는 남도, 약한것의 힘 등 살펴볼 부분이 많았어요..

 

 

 

 

제주 4·3 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고 하네요..

제주 4·3 특별법에 따라 2000년 9월부터 2003년 2월까지 2년 6개월 동안 진행된

제주 4·3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토대로 2003년 10월 15일 최종 확정된

제주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4·3 행방불명의 유해 발굴을 영상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어요~

 

 

 

 

전시장 앞에 마련된 제주 4·3 관련 도서를 감상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이에요..

헤드폰을 착용하고 4·3 홍보영상을 보고, 방명록도 남길 수 있었어요!

 

 

 

 

제주 4·3 관련 도서가 마련되어 있는 센스 굿!

 

 

 

 

너도 누군가의 꽃이었을테니 (Epilogue - You were once a flower to someone)

제주 하귀리 영모원의 추모 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뜻으로 이 빗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4·3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고 아픈 역사에 대한 치유와 화해의 길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과제인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제주 4·3이 제주만의 아픈 역사가 아닌 대한민국 역사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 같아 바람직한듯!

또한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인 제주 4·3을 통해 인권의 소중함을 깨닫고 평화와 상생의 길을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오늘은 7월3일까지 관람이 가능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시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를 관람해보는건 어떨까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지번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 미국대사관 바로 옆.

[관람시간] 10:00 ~ 18:00 (수요일, 토요일 21:00까지 야간개장) / 입장시간 :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가능

[휴관일] 1월1일, 설날, 추석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인근 세종로 공용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2018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모니터요원으로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부터 보수를 지급 받아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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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 한국 스포츠, 땀으로 쓴 역사를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한국 스포츠, 땀으로 쓴 역사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 개최를 계기로 마련된 특별전으로,

우리의 근현대사 속 스포츠의 역사, 국민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땀으로 쓴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알찬 시간이었는데요..

관람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생생한 전시 관람기를 살펴보려고 해요~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한국 스포츠, 땀으로 쓴 역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을 살펴볼까요?^^

 

 

 

 

광화문역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 특별기획전 한국 스포츠, 땀으로 쓴 역사..

 

전시를 열며 (Entering the Exhibition)

스포츠는 경쟁이라는 기본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격렬함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국제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나 그것을 보는 국민들은 스포츠 경기의 경쟁을 국가간 경쟁으로 생각하고,

스포츠 분야의 경쟁력을 곧 국가의 위상과 동일시하곤 하는데

19세기 말 도입된 한국의 근대 스포츠 또한 국가의 위상과 긴밀히 연결지어서 인식되었다고 하네요~

개항기의 스포츠는 국민들의 신체 능력을 길러서 부국강병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통치 목표와 관련되었고,

광복 이후의 스포츠는 다시 찾은 나라의 발전 번영을 위한 활동으로 여겨졌으며

20세기 후반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만큼 크게 발달한 한국의 스포츠는 대한민국 선진화의 증거로 인식된 것이라고 해요!

 

 

 

 

특별기획전 한국 스포츠, 땀으로 쓴 역사 (Korean Sports, a History Written in Sweat)

전시장 입구에는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팜플렛이 안내되어 있었어요~

어려운 시절을 살던 우리 국민들에게 스포츠는 울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리만족의 기회였다고 해요!

선수들은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하여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열심히 훈련하였고 좋은 성과를 내어 국민들을 열광시키고

땀으로 쓴 한국 스포츠의 역사는 그 자체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대한민국의 역사 그 자체였다고 하네요^^

가난했던 나라였던 대한민국은 1988년 하계올림픽 개최, 2002년 월드컵 개최에 이어 이번에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까지!

눈부시게 성장한 한국 스포츠는 이제 세계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할 만큼 발전을 거듭하였는데

 그 원동력은 우리 국민들의 한국 스포츠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니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어요ㅋㅋ

 

 

 

 

프롤로그 - 개항 이전 한국 스포츠 (Prologue - Korean Sports before Port-opening)

고대부터 우리 민족은 고유의 체육문화가 있었다고 해요~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 신에게 올리는 제천행사에서 가무를 즐기는 신체 활동이 있었고,

활쏘기, 말타기, 씨름, 수박, 차전놀이 등 무예와 관련된 신체단련을 위한 활동이 있었으며

이외에 다양한 전통 민속놀이는 한국인들의 체력 증진 및 협동심을 기르기도 했다는 사실을

단원풍속도첩 중 씨름도, 무예도보통지 권법편, 동국세시기, 셜매탄산양군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어요!

 

 

 

 

1. 근대 스포츠의 시작 (The Beginning of Modern Sports in Korea)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탈 속에서 조선은 문호를 개방했는데

이를 계기로 근대 스포츠가 도입되고 신체관념의 변화도 동반되었다고 해요~

 

 

 

 

조선, 대한제국의 정부는 체육을 장려함으로써 국민들의 몸과 마음을 굳건하게 만들고자 했는데

이를 위해 여러 법령들과 제도가 마련되었고, 학교에서는 체육이 교과목으로 지정되었다고 해요~

근대 운동회의 시작을 영상을 통해 살펴볼 수 있어 좋았어요!

 

 

 

 

가운데는 새끼줄을 동그랗게 말아 엮어 만든 축구공이라니 신기하죠?ㅎㅎ

우리나라에서 축구가 처음 도입되던 시기 가죽공은 구하기 힘들어

새끼줄을 둥글게 엮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네요! 

 

 

 

 

일제강점기의 체육은 국권 회복을 위한 도구로서 또 다른 사명을 갖게 되었는데

식민지적 상황은 조선인의 체육 활동에 많은 제한을 주었지만

3·1운동을 계기로 민족적 자주독립의식과 함께 조선인들의 체육활동도 활발해졌는데

그 결과 1920년 조선체육회가 창립되었다고 하네요..

 

 

 

 

일제의 탄압이 고조되던 상황 속에서도 체육은 조선인의 건강을 위해 기여했고,

조선인 지도자들은 스포츠가 조선의 국권회복을 위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장려했으며

스포츠는 나라를 잃었던 민족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다고 하네요^^

 

 

 

 

엄복동 자전거에요..

엄복동은 경기도 진위(현 평택시)의 자전거 가게에서 배달 점원으로 일하면서 자전거 타기를 익혀

나중에는 선수로 활동하기에 이르렀다니 대단하네요!

일제강점기 여러 자전거 대회에서 우승한 엄복동은 조선인들 사이에 매우 유명해졌고,

'하늘에 안창남, 땅에 엄복동' 이라는 유행어가 등장할 정도가 되었다고 하네요ㅋㅋ

 

 

 

 

웃터골운동장, 경성운동장, 장충체육관, 올림픽주경기장, 월드컵경기장까지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었어요!

 

 

 

 

2. 한국 스포츠의 전환과 도약 (The Transition and Takeoff of Korean Sports)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기쁨 속에 조선의 체육도 다시 시작되어

체육인들은 조선체육회를 재건했고, 조선올림픽위원회는 국제올림픽위원회에 가입했다고 해요~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전 개최된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는

한국 선수들이 Korea 라는 국적으로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ㅎㅎ

 

 

 

 

서윤복 보스턴마라톤 우승기사, 김용식 선수 축구화,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 동상, 야구화,

제14회 런던올림픽 공식포스터, 참가 선수명단, 한국 선수단 패넌트, ID카드, 축구 경기 안내서 등을 살펴보았어요~

 

 

 

 

체육인, 그들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영상관도 마련되어 있었어요~

 

 

 

 

월간 체육 창간호, 유도 창간호, 국민체조 LP음반, 남녀 중고등학교용 체육첩,

월간 배구계, 제35회 전국체육대회 임원장, 제48회 전국체육되회 동메달, 제65회 전국체육대회 기념패 등등..

 

 

 

 

1963년 1월 24일 스위스 로잔에서 올림픽 단일팀 출전 문제로 남북한 회담이 처음으로 개최되었고,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와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단일팀을 구성할 수 있었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 등 주요 국제종합경기대회 개막식에서 공동으로 입장하는 등의 성과도 있었다고 해요!

최근에는 한반도의 위기 상황으로 나북 체육교류가 정체되어 있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이 한반도의 평화와 체육교류를 위한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김일 선수가 WWA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미국의 압둘라 부차에 승리하며 부상으로 받은 챔피언 벨트에요!

 

 

 

 

선수들이 땀 흘려 이루어낸 역사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지요~

선수들의 땀이 서린 유물, 사진, 영상을 통해 그 당시 좋아하며 열광했던 선수를 떠올리며 추억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또한 선수들의 탁월한 기량 너머 있었던 스포츠 정신, 곧 화합과 평화의 정신을 함께 공유해보는 기회였어요ㅎㅎ

 

 

 

 

3. 한국 스포츠의 세계화 (The Globalization of Korean Sports)

1980년대 후반, 절차적 민주화의 성과를 얻은 대한민국은 같은 시기 스포츠 방면에서도 큰 활력을 얻었는데,

1988년 여름 제24회 서울올림픽 개최는 한국의 국가적 역량과 발전상을 전세계에 보여주었고,

이후 한국 스포츠의 발전은 여러 영역에서 나타났으나, 무엇보다 국제 대회 유치에 주목할 수 있답니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종목별 마스코트가 한자리에!

마스코트 핀 세트를 보니 어린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반가웠어요ㅋㅋ

이 외에 제24회 서울올림픽 공식음반 Hand in Hand,

대한민국선수단 및 관련인사 사인액자, 국가대표 재킷 등을 살펴보았어요!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2002 한일월드컵,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고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을 유치함으로써 국제 대회 유치 그랜드 슬림을 달성했다고 하네요~

 

 

 

 

국제 무대에서 활약한 선수들의 유니폼~

 

 

 

 

한국 선수들이 동계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것은 광복 이후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동계올림픽 대회로,

한국선수들은 이후 열린 국제 동계스포츠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고,

1992년 알베르빌동계올림픽에서는 사상 첫 메달을 획득했다고해요!

특히 한국은 쇼트트랙 종목에서 기량이 출중한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어 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이후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등 다른 종목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어

동계스포츠 강국임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다고 하네요ㅎㅎ

 

 

 

 

1923년 평양 대동강에서 전소선빙상경기대회가 열렸고,

1933년에는 전조선중등학교 빙상대회, 1935년에는 조선여자빙상경기대회 등이 개최되었다고 해요..

1936년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는

조선 선수들이 비록 일본대표로 참가했지만 준수한 성적으로 거두었고,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동계올림픽 대회는 광복 이후 조선인이 처음으로 참가한 동계올림픽 대회였으며

이후 대한민국은 각종 동계스포츠 대회 및 올림픽에 참가하여 점차 좋은 성적을 거두기 시작했다고 해요~

동계스포츠 및 올림픽에 대한 한국의 꾸준한 도전의 결과로 한국 선수들의 기량이 향상되었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의 개최도 가능해진것 같아요^^

 

 

 

 

제23회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기념 우표, 마스코트 배지, 마스코트 인형 수호랑 반다비까지 반가웠어요~

 

 

 

 

특별전 주제가 스포츠라 관람객이 직접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도록

전시장 앞에 체험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좋더라구요ㅎㅎ

 

 

 

 

알파인스키, 농구, 하키, 축구까지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 형식의 체험존 센스있는듯^^

 

 

 

 

3층 기획전시실에서 관람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오면 영상실이 있는데

편안히 앉아 지난 토크콘서트도 감상할 수 있어 즐거웠어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개최된 이번 특별전을 통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속 스포츠의 역사, 국민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한국 스포츠의 역사를

유물자료, 사진, 영상 등으로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어 알찬 시간이었어요!

아주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요했던 사건, 현상, 인물들의 이야기도 살펴볼 수 있어 뜻깊었구요..

우리나라 스포츠의 과거와 현재를 새롭게 보는 경험을 얻어 만족스러웠던 전시였어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지번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

[관람시간] 10:00 ~ 18:00 / 수요일, 토요일 10:00 ~ 21:00 / 입장시간 :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휴관일] 1월1일, 설날 당일, 추석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10대 가능 (인근 세종로 공용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2018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모니터요원으로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부터 보수를 지급 받아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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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재미있는 체험이 가득한 어린이박물관! 대한민국역사꿈마을을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대한민국역사꿈마을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어린이들에게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주제 중심으로

재미있게 무료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진 어린이박물관이라 흥미진진한 교육이 될 수 있는데요..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대한민국역사꿈마을 어린이박물관을 살펴볼까요?^^

 

 

 

 

광화문역에서 도보 2분거리 미국대사관 옆에 위치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1층에 위치한 대한민국 역사꿈마을..

대기석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

 

 

 

 

알록달록 화사하게 꾸며진 어린이박물관 입구에요..

 

 

 

 

회당 20명씩 관람일 하루 전까지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사전예약이 가능하고,

관람일 현장에서 회당 10명식 현장접수가 가능하며,

전시해설은 11시(2회차), 14시(5회차)에 약 10분 소요된답니다!

 

 

 

 

동심 가득한 대한민국 역사꿈마을 전시장 내부 모습..

 

 

 

 

전시실 1 - 그때 그 시절 꿈마을

1950년~80년대 여러 사진자료를 통해 어린이들이

부모님의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을 생생하게 알아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신장, 동복 또는 하복, 가방을 선택한 후 카메라를 응시하여 교복을 입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어요~ㅎㅎ

 

 

 

 

전시실 2 - 우리나라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상징과 선거·민주주의에 대해 체험하고,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대해서 길을 따라가며 알아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선거의 4대 원칙! 보통선거, 평등선거, 직접선거, 비밀선거 안내와 함께 대한민국의 주인으로 투표 체험이 가능하고,

태극기에 담긴 뜻을 살펴보고 애국가 빈칸을 채워보며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더라구요ㅎㅎ

 

 

 

 

1967년에 제작된 신진 퍼블리카에요..

꼬마차, 빨간차, 왕눈이차라는 별명을 가진 차를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었어요~

 

 

 

 

자동차와 기차가 담겨있는 상자를 받아서, 길을 따라가며 알맞은 자동차와 기차를 넣어보면서

길을 따라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알아볼 수 있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로 해외에 처음 수출된 포니자동차, 처음 큰 배를 만들어 수출한 공장인 울산조선소,

처음으로 모든 과정을 처리해 철을 만든 공장인 포항제철, 처음 핵에너지로 전기를 만든 곳인 고리 원자력발전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국제공항인 인천국제공항, 최초의 공장 단지인 구로공단, 최초의 고속열차 KTX 등등..

 

 

 

 

전시실 3 - 지구촌 여러 나라

지구촌 여러 나라의 문화를 살펴보고

세계의 여러 유산과 문화를 담고 있는 세계지도를 완성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꿈마을상점을 통해 세계의 다양한 자연환경과 생활모습을 알아보고,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지구촌 사람은 가까워지고 세계는 연결되어 있어

서로 물건을 사고 팔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체험하며 익힐 수 있답니다!

 

 

 

 

여러 나라의 음식을 골라 꿈마을 식탁을 꾸며볼 수 있는 코너에요..

 

 

 

 

세계의 이곳저곳을 알아볼 수 있는 세계지도 코너~

 

 

 

 

어린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다락방~

 

 

 

 

책상, 책, 방석까지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더라구요~ㅎㅎ

 

 

 

 

전시실 4 - 어린이 체험공간

어린이들이 옛날 장난감을 만져보며 부모님의 추억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꿈마을 극장을 통해 어릴적 즐겨 보았던 검정고무신 만화가 상영중이라 무척 반갑더라구요ㅋㅋ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 자전거 왕 엄복동,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까지

새로운 길을 찾아간 사람들을 이미지와 텍스트로 안내된 책을 통해 살펴볼 수 있고,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눌러보며 체험도 가능하답니다!

 

 

 

 

전시실 5 - 우리나라의 미래 나의꿈

근현대사 속 세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미래 나의 꿈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아가 통일된 미래의 대한민국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공간이에요~

메모지와 다양한 색연필이 마련되어 있어 통일을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적어볼 수 있답니다!

지난 12월 1일부터 오늘 12월 10일까지 어린이 박물관이 유지보수 공사중이라 임시휴관중인데요,

다음주에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올 모습이 더욱 기대되네요ㅎㅎ

내일은 어린이 박물관 대한민국역사꿈마을에서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고 알찬 시간 어떠신가요?^^

 

 

 

 

* 어린이박물관 대한민국역사꿈마을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지번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전화번호] 02-3703-9203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 미국대사관 옆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에 위치.

[관람시간] 10:00 ~ 17:00 / 매시 정각 입장, 마지막 입장 시간 16:00 

[휴관일] 1월1일, 설날, 추석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인근 공용주차장 세종로 주차장 이용 (5분당 300원)

[홈페이지] http://www.much.go.kr/museum/cnts/discovery.do

 

 

"2017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모니터요원으로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부터 보수를 지급 받아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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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기증특별전! 근현대사의 역사를 담은 아름다운 공유를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아름다운 공유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기증자의 대표 자료를 살펴볼 수 있는 기증특별전으로,

우리 근현대사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담고 있는 다양한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근현대사의 역사를 담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기증특별전! 아름다운 공유를 살펴볼까요?^^

 

 

 

 

광화문역 2번출구로 나와 직진하면 도보 2분거리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중인 기증특별전 아름다운 공유..

 

 

 

 

기증특별전 2013~2016 아름다운 공유 (Special Exhibition of Donated Collections 2013–2016)

전시장 입구에 비치된 팜플렛과 함께 관람하면 전시를 감상하는데 이해가 쉽고 도움이 되더라구요ㅎㅎ

 

 

 

 

특별전을 열며... (Opening of a Special Exhibition...)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국민 여러분의 기증으로 발전하는데, 그동안 많은 분들이 소중한 자료를 기증해주셨다고 해요..

개인의 삶 뿐 아니라 시대와 사회의 변천을 담고 있는 이 자료들은

박물관의 전시, 자료관리, 연구, 교육, 홍보 현장 등에서 널리 활용되어 왔고 박물관의 발전에 큰 보탬이 되었다고 하네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기증자 173명의 대표 자료를 중심으로 기증의 고마움을 담아 기증특별전을 개최하게 되었으며,

이번 자료의 범위는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IMF 당시 경제위기극복 홍보전단, 김영삼 대통령 일기 복제본과 노무현 대통령 기념 만년필,

김동익이 농림부 재직 시 받은 대통령 표창장과 임명장, 김금자가 결혼할 때 혼수로 구입한 재봉틀 등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소중한 역사적 자산이 되는 아름다운 기증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의 한국조직위원회 대회준비상황 다큐멘터리와

월드컵 조직위원회 운영국장의 인터뷰도 영상을 통해 생생히 살펴볼 수 있었어요ㅎㅎ

 

 

 

 

체신부가 1987년 3월 간행한 제5공화국 6년간의 활동을 홍보하기 위해 펴낸 우표책이에요..

우표수집이 취미다보니 서울올림픽 기념우표는 저도 간직하고 있어서 더욱 반갑더라구요~

 

 

 

 

1986년 국제출판사가 제작한 MBC FM 생활영어 방송교재와 테이프, 잡지 수험생,

마오쩌둥, 레이건, 호치민, 오바마, 스탈린, 레닌, 대처, 고이즈미, 고르바쵸프 등 세계 여러나라의 정치인 인형 등..

 

 

 

 

북청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한 손동헌이 흉남철수 때 가지고 온 북한 졸업증서와 신분증,

그리고 자료를 기증하게 된 계기도 헤드셋을 착용하고 살펴볼 수 있었어요!

 

 

 

 

자신에게 의미있지만 언젠가 흩어질지 모를 자료를 박물관에 영구히 보존되는 일은

인터뷰처럼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고, 어려웠던 시대를 함께 공감하며 기억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네요~

 

 

 

 

2010년에서 2017년까지 403명의 기증자가 57,430점의 자료를 기증했으며,

정기간행물, 사진/필름, 우편, 전단/홍보물, 생활용품/기타, 문서, 도서, 상장/상패, 디지털파일,

미술작품/휘호, 음반/테잎, 화폐/증권까지 그 유형도 참 다양함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애국가 음반, 영국에서 구입한 연대미상의 아시아 영문 지도, 제2국민병수첩, 1882년 상하이에서 간행한 서양 역사 책,

1970년대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에서 출판한 새마을운동 도서, 상주중학교 통지표,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전민조가 사용하였던 카메라, 파독광부 당시 사용한 여권과 세탁망 등

소중한 추억이 깃든 기증품들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1970년대 정상원에 의해 제작된 최초의 휴대용 연필깎이인 7쎄븐 연필깎이도 신기하고 반갑네요ㅋㅋ

 

 

 

 

제일모직이 제작한 2012년 런던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단복,

2013년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성화봉까지 정말 소중한 기증품들이네요!

 

 

 

 

제6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기념 메달,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 업무만찬 의궤도 있었지만,

2013년 제작된 강남스타일 열풍으로 기획된 싸이 우표 액자도 있어 반가웠어요ㅋㅋ

 

 

 

 

6·25전쟁 당시 활약했던 터키군 관련 문서들과 사진, 6·25전쟁 관련 다큐멘터리, 제랄도라 대령의 군복 2세트,

터키군 위생가방과 한국전쟁 참전용사 엠블렘 모자, 한국 전쟁 관련 문서들과 전쟁 사진 앨범 등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1979년 만들어진 공병우 한영타자기라고 해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 이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어 반갑더라구요ㅋㅋ

 

 

 

 

집안에서 오래 동안 내려온 것이거나 기증자가 직접 구해서 사용한 기증 자료들을 통해

기증자 개인의 이야기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역사를 생생히 살펴보는 알찬 시간이었어요!

대한민국은 숱한 굴곡을 겪으며 많은 자취를 남겼고, 자취는 자료로 남아 역사 그 자체가 되었는데,

체취가 묻어있는 기증자료가 대한민국이 걸어온 흔적으로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고리가 되어 뿌듯하네요^^

 

 

 

 

보병 제7사단의 중동부전선, 중앙청으로 돌진하는 시위대, 어머니와 면회중인 파월 병사, 대중교통 관련 사진,

역전 풍경, 시민을 구타하는 계엄군, 시내버스 바리케이드, 눈치작전, 아! 나의 조국, 실향민,

그물 내릴 준비를 하는 꽁치잡이배 등 시대를 담은 기록사진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기증자들의 삶의 흔적과 이야기가 담긴 소중한 자료를 통해 근현대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우리 사회의 어려웠던 생활모습을 짐작하고, 앞만 보고 내달렸던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ㅎㅎ

기증특별전 아름다운 공유는 2017년 12월 31일까지 개최된다고 하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셔요~

또한 이 전시를 통해 앞으로도 우리 근현대사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담고 있는 다양한 자료들이 기증되었으면 좋겠네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기증특별전 아름다운 공유와 함께 뜻깊은 관람 어떠신가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지번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

[관람시간] 10:00 ~ 18:00 / 수요일, 토요일 10:00 ~ 21:00 / 입장시간 :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휴관일] 1월1일, 설날 당일, 추석 당일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10대 가능 (인근 공용주차장 세종로 주차장 이용 : 5분당 300원)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2017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모니터요원으로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부터 보수를 지급 받아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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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공동기획전! 67년만의 귀향을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67년만의 귀향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창설 10주년을 맞이하여 발굴한 전사자의 유품과 신원을 확인한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6·25전쟁의 아픈 역사를 알아보고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 특별전시회인데요..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공동기획전! 67년만의 귀향을 살펴볼까요?^^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4월11일부터 6월11일까지 개최하는 특별전시! 67년만의 귀향..

 

 

 

 

67년만의 귀향 (Bring Them Home)

전시장 입구의 팜플렛과 함께 전시회를 관람하면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고 이해가 쉬워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프롤로그부터 1부 나라에 바친 생명, 2부 잊을 수 없는 이들, 3부 그리운 집 가족의 품으로, 에필로그까지!

또한 영상실도 마련되어 있었는데요.. 귀여운걸과 함께 차근차근 살펴볼까요?ㅎㅎ

 

 

 

 

프롤로그 -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억합니다

(Prologue - In the memory of those who could not return from the battlefields)

북한의 기습적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에 대한민국 수많은 젊은이들이 참전하였고, 

16만 3천명에 이르는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는데 전쟁 중 2만 9천여 명의 유해가 수습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13만 3천명의 유해가 우리 산하에 남겨졌다고 해요.. 나라의 부름을 받은 아버지, 형제는 전쟁터로 나가 산화한 후에

이름만이 돌아오게 되고 가족들에게는 총소리, 공습, 피난 등 수많은 전쟁의 기억 중에 찾지 못한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응어리처럼 남았는데 전쟁의 아픔은 바로 사랑하는 가족과의 헤어짐이죠..

삶이 언제는 죽음으로 바뀌는 전장에 나간 군인을 위한 긴 기다림.. 이제는 돌아올 수 없음을 전사통지서 한 장으로

확인하고, 위패라도 모실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온 날이 이제 60년이 훨씬 넘었죠..

격전지에 시신이 남겨진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해 신원확인을 하는 사업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2007년 창설, 이하 국유단)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요!

2000년 이후 찾은 국군 전사자 유해는 9,500여 위이며, 2017년 4월까지 신원을 확인한 전사자는 121명이라고 하네요~

꼭 찾으러 오겠다는 지키지 못한 전우의 약속을 이들이 지켜나감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1. 나라에 바친 생명 (Lives sacrificed for the country)

6·25전쟁 발발 때에 육군, 해군(해병대), 공군에 103,827명의 병력이 있었고, 경찰 48,283명이 복무하고 있었다고 해요..

기습 남침한 북한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밀려, 국군은 3일 만에 서울을 내주고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했으며

유엔군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고 국군은 반격을 시작해 압록강까지 이르렀지만,

중국군 참전에 따른 후퇴, 중부 전선에서의 교착전이 있었다고 해요..

이렇게 한반도 전역에 걸쳐 격전에 격전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70만 명이 넘는 병력이 새로 충원되었고,

학도병, 국민방위군의 동원도 있었는데 이들 중 수많은 병사들이 죽었고, 현장에 남겨진 유해도 13만이 넘었다고 하네요..

6·25전쟁 국군과 유엔군의 인명피해 현황, 6·25전쟁 개전 당시 남북한의 전력비교,

당시 한국군이 사용한 철모 등을 전시되어 있었어요~

 

 

 

 

1-1. 나라의 부름을 받고 (Called to serve the country)

6·25전쟁 개전 초 21,478명의 국군 전사자가 있었고, 낙동강 방어전에서만도 14,125명의 전사자가 있었다고 해요..

국군과 경찰, 그리고 유엔군의 저항 속에서 계속적으로 전사자가 발생했고, 끊임없이 신병을 배치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며

전쟁 발발 직후에는 전선의 상황이 급해 학도병 등 신병을 제대로 훈련시킬 여유가 없어

신병은 몇 시간의 기본 사격훈련 후 전장에 투입되기도 했다고해요..ㅠㅠ

전쟁 초기에는 징집자명부 작성, 징병검사 등의 입영 절차가 제대로 실행될 수 없었고

실제로 신병훈련소에서 4주~16주의 훈련을 받고 각 사단 등으로 배치 받는 것은 제1신병훈련소가 만들어지면서라고해요!

제1신병훈련소는 1950년 8월 14일에 대구에 설치되었다가, 1951년 1월 22일 제주 모슬포로 이전하였고,

제2신병훈련소는 1951년 11월 1일 논산에 설치되었다고 하네요..

군인들은 신병훈련을 마치고 잠시 가족과 만나지만, 그 기억을 뒤로하고 전쟁터로 향했다고 하는군요..

6·25전쟁에 참전한 국군 장병들이 출정할 당시 조국 수호를 맹세하며 서명한 무운장구 태극기, 군입대 홍보 포스터,

입대축원자수, 국제보도연맹에서 1952년 발간한 사진화보집으로 세 아들을 육군 공군 해군으로 보낸 어머니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 PICTORIAL KOREA 1951-1952, 전쟁 참전을 기념하기 위해 수여된 휘장인 6·25전쟁 종군기장,

철도경찰대 전출자 명부, 고흥경찰서 소속 경찰 참전 기념사진, 대한경찰전사 제1집 민족의 선봉, 태안사전적,

국립경찰전문학교 졸업기념 사진첩 등을 살펴보았어요~

 

 

 

 

1-2. 전선에서 (On the front line)

전투가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졌기에 이들이 마지막 숨을 쉬었던 공간도 전 국토에 산재하는데

이들이 전사한 공간은 6·25전쟁의 주요 격전지라고 해요..

한 전우는 1950년 9월 안강전투에서 두 명의 전우를, 한 명은 형산강 건너서 한 명은 경주방향 300고지에 묻었다고 해요~

한 전우는 1952년 여름, 강원도 인제, 김화지역 전투에서 분대원 8명을 현장에 묻고 계속 전투를 했다하고,

한 전우는 1952년 3월 가리산 전투 때 전사한 중대원을 700고지 8부능선 교통호에 묻었다고 하네요..

전투 현장에서 국군 병사들은 북한군, 중국군과 싸웠고, 그 자리에 묻힌 후 하염없는 시간만이 흐르게 되었죠..

6·25전쟁 당시 전투 상황을 재현한 전투 진지 모형을 보니 더욱 실감이 나더라구요~

진지는 전투를 위해 작은 규모로 파놓은 참호인 개인호와 개인호들을 연결하기 위해 길게 판 교통호 등으로 구성되는데

유엔군과 합동으로 작전이 진행된 전투 진지는 모래 주머니를 사용해 더욱 견고하게 지었다고 하네요..

 

 

 

 

1-3. 전사통지 (Casualty notice)

전쟁 초기와 낙동강 방어전에서 많은 전사자가 있었지만, 1951년 이후에도 전방에서의 교착전에서 많은 국군이

전사했는데 국군 5만여명이 이 교착전 기간 동안 묵숨을 잃었고 고지쟁탈전이 계속되었다고 해요..

1951년 8월 강원도 양구에서 단장의 능선 전투가 있었는데 894고지, 931고지, 851고지를 연결하는 이 능선을

되찾기 위해 30일간 싸웠다고 하네요.. 1952년 10월 경기도 철원에서 백마고지 전투가 있었는데 철의 삼각지대라 불리는

철원, 평강, 김화는 국군과 유엔군이 중국군, 북한군과 대치해 있었고,

백마고지 전투에서는 국군9사단이 중국군 2개 사단에 맞서 6번이나 적에게 고지를 내어 주었지만 7번째에서 끝내 지키고

1953년 6월 강원도 고성에서 351고지 전투가 있었는데 공산군은 국군과 유엔군 38연대가 점령하고 있었던

351고지를 탈취했고 국군과 유엔군의 재탈환 작전은 실패했다고 해요..

수없이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상황에서 유해를 수습할 여유는 없었고 1953년 여름 긴 전쟁이 끝났다고 하네요..

어머니는 전장의 아들을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않았고 전사통지서, 실종확인서 만이 왔는데

이 종이쪽지는 전쟁 중 또는 전쟁이 끝나 한참이 지난 이후에 집으로 날아들었다고해요..

 

 

 

 

전사자 매장 및 화장 보고서, 묘소 기록 문서, 전사자 명부, 불명자 군번순 명부,

전사통지서 양식, 전사확인증과 봉투, 전사통지서, 모자원직제, 상이군경 및 군경 유가족 신고 안내장,

상이군경 및 군경 유가족 신고 포스터, 원호의 달 포스터, 전몰경찰 합동제사 사진, 전사자 유가족 초청행사 사진,

제3차 육·해·공군 전몰장병 합동 추도식 안내장 등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군인들에게 지급한 개인 정보가 기록된 국군수첩, 전장에서 음식을 덜어먹을 때 사용하는 식기,

대검을 안전하게 소지하기 위한 대검집, 한국군에 기본으로 지급한 M1 소총,

소총의 끝 부분에 꽂아 백병전에 사용하는 M1 대검, M1 소총의 M1 실탄, M1919 기관총탄(250발)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영상실에서는 고 박영구 하사의 딸 박래순님, 고 장복동 일병의 아들 장윤채님의 영상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2. 잊을 수 없는 이들 (Unforgettable people)

총알이 빗발치는 참호 속에 남겨진 전우를 어떻게 잊을까..

남겨진 유해라도 찾아 가족에게 보내 드린다는 약속을 언제쯤 지킬 수 있을까..

수습하지 못했던 전사자 유해를 찾기 위한 노력은 전쟁 직후부터 1960대까지 있었고,

1967년에는 포항 일대에서 유해를 수습하기도 했다고 해요.. 

한동안 유해발굴감식사업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잊을 수 없는 이들을 꼭 찾아야 한다는 염원은 2000년부터

유해발굴감식사업을 다시 시작하게 했고 전쟁 때 만나 함께 싸웠던 전우를 떠올리며

이제라도 그 약속을 지키고자 했다고 하네요..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도 잠시 감상했는데요.. 퀴즈를 풀려면 꼭 살펴보아야 한다는 사실^^

 

 

 

 

2-1. 전사자를 찾아서 (In pursuit of finding those who lost their lives in the war)

나라를 위한 그들의 희생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이름 모를 산야에 남겨진 전우를 하나 둘씩 찾았다고 해요..

각 전투지역의 정보가 수집되었고 전사자 유해가 묻힌 지역에 대한 증언을 할 수 있는 참전용사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적극적인 발굴사업 필요성이 제기되어 2000년 6·25전쟁 50년 기념사업으로 국군이 유해발굴사업을

경상북도 칠곡군 다부동에서 시작하였다고 하네요~

2007년에는 국유단이 창설되고, 2008년에는 6·25 전사자 유해의 발굴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며

국유단은 국립서울현충원의 위패, 묘비를 분석하고 참전 용사들의 제보와 증언, 그리고 전쟁사료 상에 나타나는

주요 격전지를 정리하고, 현장을 조사하여 전사자 유해소재 지도를 만들었으며 발굴된 유해와 유가족의 친족관계를

비교하기 위해 유가족 유전자 정보를 수집하였는데, 유전자 정보를 얻기 위해 매년 현충일을 전후해 국립 현충원에서

채혈 기동팀을 운영하고, 서울역 등 다중집합 시설을 찾아가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는 등 가족 중 전사자가 있는 사람들의

유전자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해요.

2010년 국유단은 유해발굴 계획, 조사, 발굴, 감식 업무가 위계적으로 연결되고 업무에 필요한 자료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전사자 종합정보체계를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2-2. 이름 없는 유해 (Nameless remains)

전사자 유해발굴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치는데 먼저 발굴준비, 참전용사의 증언,

주민의 제보와 함께 전투기록 분석을 마친 후 전사자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 현장을 답사,

개인호 교통호 전투잔해 등의 전투 흔적을 살피고 발굴할 곳을 선정,

산골 깊은 곳 마른 땅을 조심스럽게 파기 시작한다고 해요..

유해는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철모를 쓴 채 잠들어 있는 군인, 인중에 총탄 두 발이 박힌 군인,

밥그릇을 안고 누워 있는 군인 등 처첨한 전쟁터의 모습과 전우를 묻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게 되는 것 같아요..

다음은 발굴과 수습으로 유해발굴의 시작을 알리는 개토식을 하고, 현장을 파 내려가며 유해를 발굴하고,

유해를 오동나무관에 넣고 임시로 봉인하면 이름 없는 이 유해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일이 남게 된다고 하네요..

유해소재 분석지도, 유해발굴 기록지, 유해발굴병사 발굴복, 유해소재 조사 탐사용 장비, 유해발굴 장비도 살펴보았어요~

 

 

 

 

2-3. 그날을 말하다 (Talking about the day)

일 만 여명의 유해와 함께 수십만의 유품이 세상에 드러났는데 철모, 소총, 탄약과 탄피, 대검과 대검집, 허리띠의 버클,

판초우의, 전투화 밑창, 야삽, 호루라기 등 긴 시간만큼 삭아 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관등성명이 붙어 있는 군복은 없어지고, 단추만 그 자리에 남은 경우도 있고

가끔 운 좋게도 인식표, 신분증이 발견되어 전사자가 누구였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한모금의 물로 타는 목을 축였을 수통, 식판을 닥닥 긁어 한쪽이 닳은 숟가락, 플라스틱 빗, 칫솔, 비눗갑, 사발, 라이터,

구두약, 손거울, 손목시계 등 일상생활의 흔적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전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기도 하고 헤어짐의 슬픔을 그대로 간직한 물건도 있고

그리운 가족에게 편지를 쓰던 만년필, 연필, 전우의 마음을 애잔하게 했던 하모니카, 목에 항상 걸고 다녔던 목걸이,

사랑하는 가족의 사진과 편지 등 60여 년 전 그날의 현장..

 

 

 

 

3. 그리운 집, 가족의 품으로 (Lives sacrificed for the country)

오랜동안 소식을 잃었던 이가 작은 함에 담겨 가족에게 돌아가는군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는 환영 현수막이 걸렸고, 함을 든 군인은 문을 두드리고

전사자의 이름을 알리는 군인의 떨리는 목소리에 가족은 한없는 눈물로 함을 어루만지게 되죠.. 

그러나 조국의 산하에서 찾아 온 일 만 여의 유해는 아직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해

그가 누구인지를 찾는 본격적인 작업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고 해요..

우선 국군인지 혹은 적군인지를 판단하고 삼차원 스캐너 같은 장비를 이용해 정밀감식을 진행하고, DNA도 감식해

데이터 베이스에 있는 유가족들의 DNA와도 비교하여 유해가 어떤 사람과 가족관계에 있는지 확인한다고 하네요..

언젠가는 모든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해 봅니다..

 

 

 

 

3-1. 전사자 이름 찾기 (Identifying the names of the fallen)

유해발굴 현장에서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요..

치열한 전투 현장에서는 국군, 유엔군, 북한군, 중국군 유해가 함께 발견되는데

모두가 머나먼 곳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므로 이름을 찾기 위한 작업이 시작된다고해요..

국군과 북한군, 중국군을 유해로 분별하기는 어려워 유해와 함께 발견된 군복의 단추, 소지품을 살피고

함께 있는 소총과 탄약을 점검하지만 정확하다 말할 수 없다고 해요..

전쟁당시 국군과 북한군 등은 노획한 상대방의 장비와 물품을 사용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당시 전투 상황을 분석하고

부대의 배치, 공격과 방어의 전술을 살펴보는데 수없이 일어났던 고지쟁탈전에서는 이러한 분석도 정확하기가 어려워

어떤 유해는 아군인지 적군인지의 판단을 유보하기도 하는데 전사자 한분 한분 이름을 찾기는 갈 길이 먼 여정이라고해요

PPS-43 기관총, Mosin Nagant 소총과 탄환, 중국군 전투화와 수통, 국군 수통과 전투화, 기관단총 등을 살펴보았어요!

 

 

 

 

3-2. 첨단과학의 힘으로 (With the power of advanced technology)

국군으로 판명된 유해는 정밀감식을 위해 국유단 중앙감식소로 옮겨지고, 유해와 함께 발견된 유품도 함께 오는데

인식표, 사진, 이름을 기록한 유품 등이 있는 경우 유가족을 찾아 DNA를 확인하여 신원을 확인한다고 해요..

유품이 없는 경우는 유해의 DNA와 모든 유가족의 DNA를 비교하는데 만약 치아를 포함한 두개골이 수습된 경우라면,

슈퍼임포즈기법 등으로 유해의 얼굴 모습을 복원해 신원확인의 자료로 삼기도 한다고 해요..

근래에는 DNA 감식기술이 발달하여 유해감식에 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하는군요~

DNA 감식은 1차로 모계혈통을 대상으로 mt-DNA를 이용해 감식하고 2차로 부계혈통을 대상으로 n-DNA를 이용해

감식하는데 mt-DNA는 유해의 조직 유전자와 생존 친인척의 조직 유전자를 비교하는 방법이라고 해요..

n-DNA는 Y-STR 검사와 Autosomal STR 검사가 있는데, Y-STR은 남성의 Y염색체를 Autosomal STR은 여성 자녀의

유전자를 비교하는데 전사자의 신원확인의 성패는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에 달려있다고 하네요..

임시 감식소에서 이송된 유해와 유품은 전처리실에서 이물질 등을 제거한 뒤 기본 정보를 등록한 이후

주감식실로 옮겨 첨단 감식 장비를 활용해 발굴된 유해의 정밀 감식을 수행함을 모형을 통해 생생히 살펴볼 수 있었어요~

 

 

 

 

발굴된 유해나 유품의 미세한 부분을 정밀 분석하는 측정장비로

육안으로 관찰이 불가능한 전사자 유품에 사용되는 미세영상 분석기기,

발굴된 유해나 유품의 미세흔적을 상세히 분석하는 장비로

다양한 측정 및 통계분석이 가능한 첨단기기인 미세영상 분석광학기기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첨단과학의 힘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3-3. 드디어 가족과 만나다 (Finally getting back together with family members)

아버지가, 오빠가, 동생이 이렇게 돌아오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60여년의 긴 기다림이 그리 만들었지만,

함께 돌아온 유품이 보이고 애절한 눈빛을 한 작은 사진이 보이고 재회가 믿기지 않고 가족들이 이야기를 털어놓고,

마지막 전투에 나가기 전 가족에게 건네었던 사진을 꺼내 보이며 전쟁터에 보낸 편지와 엽서를 간직하며 살았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고 아버지가 불러주었던 이별가를 기억하며 제주 훈련소에서 만났던 날을 잊을 수 없고

아버지 없이 살았던 평생을 한을 풀었다고 하네요! 형을 만나기 위해 전투에 참가했던 동생은

보고팠던 형을 유해로 만나고 북녘 땅에서 발견된 유해는 지구 반 바퀴를 돌아 가족의 품에 안기기도 하는

모두가 한편의 마음 아픈 드라마죠~

 

 

 

 

하사, 일병, 일등상사, 이등상사 등 신원확인 전사자의 다양한 유품들이에요~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 호국의 얼 함 등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집중조명 01. 먼 나라로 향합니다 (Heading to a far-away country)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6·25전쟁 참전 사망군인의 유해발굴과 송환이 있어

유엔군 유해 4천여 구와 공산군 유해 13만여 구가 이때 상호 송환되었다고 해요..

그렇지만 2000년에 이르기까지 유엔군, 중국군, 북한군의 유해발굴 사업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다가

국유단의 유해발굴감식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1만여 유해 중에는 유엔군이나 중국군, 북한군의 것으로 판명된

유해가 나타났다고 해요.. 2016년 현재 UN군 13구, 중국군이 564구, 북한군 712구의 유해가 발굴되었는데

모든 유해에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예우를 다했다고 해요..

2008년 한미유해발굴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16년 유해봉환행사를 진행새 10구의 유해를 미국에 인도헀고,

2014년부터는 중국정부와의 협약에 따라 중국군 유해 인도가 매년 이루어진다고 하네요..

북한군은 아직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못하고 경기도 파주에 적군묘지를 조성해 유해를 안치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UN 한국전쟁 기념 메달, 6·25전쟁 참전국 기념우표, 미국군 별문양 단추, 해병대 단추, 영국군 단추,

캐나다군 베레모표, 뉴질랜드군 단추 등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집중조명 02. 수십 년의 기다림 (Waiting for decades)

6·25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가족에 대한 기다림은 나라 안 모든 이들이 함께 겪는 아픔으로

사람들의 기다림, 슬픔,위로는 문학작품, 대중가요, 영화 등에 고스란히 배어있어

문학작품에는 이별, 공포, 갈등 등의 전쟁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고 해요~

까맣게 탄 땅을 의미하는 구상의 초토의 시, 전쟁터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의 충격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윤흥길의 장마 등이 대표작이고, 전쟁의 처절함과 이별의 그림움을 담은 현인의 전우야 잘자라,

허성희의 전우가 남긴 한마디 등은 가족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하네요..

전쟁은 영화에도 나타나느데 윤봉춘은 유엔군의 서울 수복작전과 북진을 기록한 서부전선을 만들었고,

가족들은 문학작품, 대중가요, 영화 등에 기대어 수십년을 기다림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6·25전쟁을 담은 대중 음악으로 아내의 노래, 임계신 전선 등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체험공간 굿!!

 

 

 

 

에필로그 - 마지막 한 사람까지

(Epilogue - Until the very last person is found)

국립서울현충원 경내 동편에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본관이 있는데

이곳에 아직도 전사자를 찾지 못한 지팡이를 의지한 가족이 새로 발견한 유해 중에 혈육이 있을까 해서 찾아온다고 해요..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가족의 소식을 듣고 싶은 심정이 전해지는군요.. 

건물 오른편에는 전 국토에서 찾아온 전사자 유해를 임시로 안치하는 국선제가 있는데

천정 높이까지 정중히 모셔진 1만여개의 함에는 번호만이 찾지 못한 이름을 대신해서 적혀있는데

6·25전사자의 유해와 유품이 가득하다고 하네요..

아직도 찾지못한 12만4천여명의 전사자를 찾기 위해 오늘도 깊은 산 골짜기와 능선을 걷는 국유단 장병들을 응원합니다~

 

 

 

 

경기도 고양시 관산동 심리산 유해발굴 당시 출토된 인식표에요..

아직 유가족을 찾지 못해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에서 소장중이라고 하네요..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 무한책임 의지를 실현하는 Vision과

유해발굴 사업의 의의를 살펴볼 수 있었어요~

 

 

 

 

퀴즈 이벤트와 해시태그 이벤트도 진행되어 전시회도 보고 퀴즈도 맞추고 선물까지 받을 수 있어 참 좋은듯^^

 

 

 

 

유해발굴 탐구 영역 퀴즈 이벤트에도 참가해보았어요~

누구나 쉽게 풀 수 있지만, 전시회를 꼭 보아야 풀 수 있는 문제였구요..

모든 문제 정답자 중 추첨을 통해 국유단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저도 살포시 기대해봅니다ㅋㅋ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7년만의 귀향 특별전시를 통해 67년만에 집으로 돌아온 전사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마음 아픈 6·25전쟁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오늘은 67년만의 귀향 전시를 보며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며 마지막 흔적을 확인하는 시간 어떠신가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지번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

[관람시간] 09:00 ~ 18:00 / 수요일, 토요일 09:00 ~ 21:00 / 입장시간 :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10대 가능 (인근 세종로 공용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2017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모니터요원으로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부터 보수를 지급 받아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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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최중인 1876년 개항 대륙에서 해양으로 주제의 특별전시를 소개해 드릴께요~

1876년 개항 대륙에서 해양으로 특별전시는 140년 전 조선이 맞은 개항을 좀 더 크고 넓은 시각에서 접근하여

오늘날 냉엄한 국제관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존립과 번영의 길은 무엇인지 묻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전시인데요..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시! 1876년 개항 대륙에서 해양으로를 살펴볼까요?^^

 

 

 

 

광화문역 2번출구로 나와 직진하다보면 역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3월26일까지 개최하는 특별전시! <1876년 개항 : 대륙에서 해양으로> 에요..

 

 

 

 

1876년 개항 대륙에서 해양으로 (The Opening of Korea in 1876 From Continent to Ocean)

전시장 입구에 있는 팜플렛을 보며 관람하면 전시를 감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보다 이해가 쉽답니다!

조선은 1876년 일본과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한 이래 서구 여러 나라와 일련의 근대적 외교관계를 맺었는데,

이 개항은 한편으로는 근대적 국제관계의 수립, 왕정체제의 개편, 국제교역 확대와 근대적 제도와 시설의 도입 등의

면에서 한국사에서 근대의 기점으로서 의의를 갖는 한편, 개항은 외압에 의해 불평등한 외교관계가 수립된 이후

조선이 열강의 각축을 거쳐 국권을 잃는 계기이기도 했다고 해요~

그럼, 140년 전 조선이 맞은 개항을 좀 더 크고 넓게 장기사적인 시각에서 접근한 특별전을 살펴볼께요ㅎㅎ

 

 

 

 

프롤로그 - 고지도를 통해서 본 두 개의 동아시아관

(Two Different Views of East Asia Revealed in Old Maps)

동아시아 국가들의 개항은 동아시아 국가들과 서양 제국이 만나게 된 계기였어요~

동아시아의 입장에서는 서구국가들의 방문을 경험한 사건이었고,

서양 제국들의 입장에서는 동아시아를 발견한 것으로 볼 수 있었는데요..

이러한 접촉을 통해서 양측의 상호 인식이 심화되었고 이어서 활발한 인적·물적 교류가 이루어졌지만,

이는 국가간의 충돌과 주권 침탈, 식민지화까지 동반한 과정임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천하도지도에요..

이 지도는 조선에서 제작된 서구식 세계지도로 서양선교사 알레니의 직방외기에 수록된 만국전도를 바탕으로

그려진 것으로, 여지도 라는 지도첩에 수록되어 있다고 해요~

천하도지도는 마테오리치의 곤여만국전도와 같이 지도의 중앙경선을 태평양 중앙에 둠으로써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를 중앙 부분에 배치하였는데,

이는 전통적인 중화사상을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유럽 중심의 구도를 태평양 중심의 구도로 바꾼 것이라고 하네요..

 

 

 

 

중국 중심 세계관 천하도에요..

천하도는 중화적 세계 인식에 기초하고 있어 중국은 중앙에 위치한 내대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원 테두리로 강조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천하도가 조선에서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중국만큼 부각되어 있지 않은데,

조선은 성리학을 수용하며 중국의 중화적 세계 인식도 함께 받아들였기 때문에

스스로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보다는 중국에 버금가는 문화국으로서의 소중화를 내세웠다니 안타깝네요..

 

 

 

 

1. 대륙체제 속 조선 (Joseon Amidst the Continental System)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조선과 같이 중국에 인접한 주변국은

조공-책봉 관계에 바탕한 사대 관계를 맺었다고 해요~

조선은 17세기 중반 명나라의 멸망 이후 중국을 제패한 만주족의 청나라에 대해서도 사대관계를 유지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중화문명의 계승자로 자임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일본에 대해서 조선은 교린의 원칙 하에 외교관계를 맺었는데,

임진왜란 · 정유재란 이후로 양국간 긴강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조선통신사의 파견 등 우호적인 교류 관계가 회복되었으나,

19세기 들어서는 조선통신사 파견이 중단되는 등 양국간 교류는 줄어들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좌측에 보이는 커다란 지도가 18세기에 제작된 세계지도인 천하지도에요..

중국의 13성과 조선, 류큐가 그려져 있는데 지도에서 류큐국은 조선에서 5,430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일본이 그려져 있지 않은 반면 류큐는 조선 영토의 절반에 가까운 크기로 묘사되어 있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이는 중국 중심의 중화체제를 반영한 것으로 조공국이 아니었던 일본은 지도에 빠져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이 외에 조선후기 대외관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인

조선 인조 이후의 대청 및 대일 관계의 교섭문서를 집대성한 책 동문휘고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좌측부터 순서대로 송원화동사합편강목, 사조선록, 이덕형 일행의 사행이에요..

송원화동사합편강목은 이항로를 개조로 하는 화서학파의 학자들이 편찬한 강목 형식의 한·중 합편 역사서로,

중국 송·원대의 역사와 고려 역사 일부를 합편해서 기술하고 있다고 해요~

과거 중국과 고려의 역사에 대해 주자학적 정통론을 통해 해석하려는 사관을 담고 있으며,

조선이 중화문명의 마지막 계승자라는 관점 또한 담고 있는데

대외적으로 위기를 겪던 조선의 상황에서 과거 역사 속의 정통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신감을 고취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사조선록은 중국 명나라 세종 때의 문신인 공용경의 조선 사행록으로,

1537년(중종 32) 황태자의 탄생 조서를 반포하기 위해 조선에 사신으로 왔을 때의

사행 절차 및 거리 풍경, 교류 내용 등을 기록하였다고 해요~

이덕형 일행의 사행은 조선 인조의 책봉을 요청하기 위해 1624년에 명나라에 파견된 이덕형 일행의

사신 행차를 담은 그림으로, 같은 내용을 담은 항해조천도를 후대에 묘사한 것으로 보이지만,

묘사 방법이나 등장인물의 숫자 등에서 약간의 차이가 보임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ㅎㅎ

 

 

 

 

통신사행렬도에요..

화면 영상을 통해 움직이는 모습으로 살펴볼 수 있어 생동감 가득 리얼해 좋더라구요~

1711년(숙종 37)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한 통신사 일행을 맞이하기 위하여 사전에 일본 측에서 그린 배치도로서

에도로 가는 행렬을 그린 그림이라고 해요..

이 행렬도의 전체 길이는 41.72m의 크기이며 299명의 통신사 행원과 1,800여 명의 일본 측 관계 무사와

호위 병졸, 짐꾼, 129필의 말이 묘사되어 있었어요!

 

 

 

 

2. 서세동점의 시대, 조선의 선택 (Western Powers' Eastward Expansion and Joseon's Choice)

서양인들이 교역, 선교 등을 목적으로 각지로 진출한 것은 15세기 이래의 일이지만,

이들 국가들이 동아시아 국가들에 접근한 것은 더 나중의 일이었고,

조선의 경우에는 중국, 일본보다도 늦게 서양의 문물을 접했다고 해요~

서양문물의 전파 이후, 천주교 탄압 등이 계기가 되어 일어난 서양과의 군사적 충돌은

조선의 대외관계를 더 경직되게 만들었으며 주변국에 비해 문호개방이 더 늦어지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하네요..

 

 

 

 

역사책에서 많이 보았던 그 척화비!

이 비석은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 당시에 비문을 짓고 신미양요 이후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에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데

이것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서양과의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공표한 것이라고 해요~

 

 

 

 

상단은 해국도지, 하단 좌측은 수역은파첩, 우측은 을병연행록이에요..

해국도지는 청나라 위원이 지은 세계지리서로 1844년에 간행되었고 조선에는 19세기 전반 연행사에 의해

유입되었다고 해요~ 지도와 지지로 나누어, 세계 각국의 지리, 역사를 소개하고

양이를 막기 위해 서양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하네요..

수역은파첩은 강세황이 1784년에 청나라 황제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사신으로 중국에 가면서 기록한 내용을 엮은 문헌으로,

직접 지은 시와 천주당을 방문한 기록, 서양의 건축과 회화를 본 후의 호기심과 놀라움에 대해 기록하였다고 하네요!

을병연행록은 홍대용이 쓴 중국 사행일기로 저자가 1756~1766년 청나라에 다녀 온 내용을 기록한 것이라고 해요~

천주당을 방문한 기록, 청나라 학자들과 교유하며 문답한 내용, 천문학, 음악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기록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에요~

상단은 어재연 시호교지로 조정에서 어재연에게 시호를 내리는 교지에요..

어재연은 1841년(헌종 7) 무과에 급제하고 1866년 병인양요가 발생하자 강화도 광성진을 수비하였고,

1871년(고종 8)에 신미양요가 발생하자 순무중군으로 강화도에 급파되었으나,

광성진에서 미군의 침략에 대항하여 싸우다 전사하였다고 해요..

조정에서는 병조판서겸삼군부지사에 추증하고 충장이라는 시호를 내리며 교지를 발급하였다고 하네요~

하단은 좌측부터 강화도를 소개하고 있는 미국 잡지, 운현서첩, 정한론의 내용이 그려진 일본 판화, 심교서류에요..

운현서첩은 김포 통진에 차려진 병영에서 기록한 병인양요의 일지에요..

1866년 프랑스는 선교사 처형을 구실로 군대를 파견, 그 해 9월 강화도에 상륙하였는데

조선군은 김포의 문수산성과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에 맞서 격퇴했다고 해요..

조선군이 왕명을 받아 출정한 상황, 프랑스군과의 접전 상황 등이 기록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심교서류는 1874년 8~10월에 걸친 한일외교문서에요.. 1873년 대원군이 하야하고 고종의 집정이 시작되자,

조선의 개방과 개항 외교를 추진해 오던 일본은 조선 국정을 내탐하기 위해 일본 외무성 관리인 모리야마시게루를

조선으로 파견하였다고 해요~ 이 문서를 통해 일본이 조선을 개항시키고자 하는 구체적인 절차 및 방법,

그리고 이 과정에서의 일본의 야심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어요~

 

 

 

 

청나라의 황준헌이 1880년경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비하기 위해

조선, 일본, 청나라가 취해야 할 외교정책을 기술한 책인 조선책략,

최익현의 상소문을 모아놓은 상소문집인 경록,

최익현의 척화와 관계되는 시문, 상소, 행적을 수록한 책으로 글과 함께 최익현의 행적과 관련된 삽도가 실린 일성록,

갑신정변에서 김옥균의 역할을 서술한 책인 갑신정변과 김옥균,

김옥균의 글과 행적 등을 모아 일본에서 발행한 책인 조선명사 김씨 언행록,

김옥균과 박영효의 유리건판(잘 닦은 유리판에 감광제를 발라 말린 필름이 발명되기 전까지 사용된 원판 사진),

1902년 당시 시국을 염려하는 최익현의 글과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는 최영조 글을 담은 최익현, 최영조 부자 간찰,

1866년 병인양요가 발생하자 위정척사적 입장에서 서양인들의 침범을 경계하기 위해 작성한 통문

개화와 위정척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에요~

 

 

 

 

병인양요 · 신미양요에서 충돌한 서양제국과 조선의 군사력을 한눈에 비교하기 쉽게 안내되어 있는 센스~!

그리고 좌측 하단의 무기는 불랑기포로 신미양요 때 조선군의 주력 화포였다고 해요!

이 포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1853년(철종 4)에 제작되었으며, 장인 김애립에 의해 제작된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불랑기포는 15세기경 포르투갈 등 서양에서 제작되어 중국 명나라에 전해졌는데,

우리나라에는 1563년 명문이 있는 불랑기포가 전해지고 있어 임진왜란 이전 조선에 전해진 것으로 보이네요..

 

 

 

 

3. 조선의 개항 (Joseon's Opening of Ports)

1873년 고종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하면서 조선의 대외정책에 변화가 왔는데

조선 내에서도 문호를 개방하자는 주장이 힘을 더해 갔기에

조선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1876년 일본과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했고,

이어서 미국, 영국 등 서양의 국가들과도 근대적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나

이들 조약들은 불평등 조약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는 사실ㅠㅠ

조약 체결 이후 조선은 외국에 시찰단을 파견하는 한편, 이어서 외국인 고문을 초빙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국제 질서에

맞춰 나가고자 했다고 해요~ 부산, 원산, 인천 등의 개항장에는 외국인들이 유입되고 해외 문물이 도입되었으며,

조선의 전통적 사회, 문화가 바뀌기 시작했는데 이 같은 변화는 다른 지역으로도 전파되었다고 하네요..

한성 등 도시에서는 교육, 의료 등 각종 신문물이 도입되면서 사람들의 삶도 변화하기 시작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조일수호조규 반대 상소에요..

조일수호조규를 반대하는 상소로, 조일수호조규 13관 내용 하나하나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요..

1866년 병인년의 상소는 위정척사 기조를 국가의 정책으로 채택하게 했으나,

더 활발했던 1876년 상소들은 조선 정부가 개항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전시장 내부 곳곳에는 차별화된 형식의 전시로 시선을 집중시켰어요~ㅎㅎ

 

 

 

 

조선 정부는 해외 각국에 시찰단을 파견함으로써 세계의 변화를 이해하고자 했는데,

일본에 수신사(1876~1882년 동안 3차 파견), 조사시찰단(신사유람단, 1881년), 청나라에 영선사(1881년),

미국에 보빙사(1883년)가 파견되었다고 해요~

해외에 시찰단으로 다녀온 인물들은 대개 조선의 근대화를 선도하는 개화 세력에 합류했다고 하네요..

각국과 근대적 조약을 체결한 이후는 외국인들이 조선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외교 관계를 수립한 국가의 외교관들이 조선에 파견되었고, 독일인 묄렌도르프, 미국인 오웬 대니 등과 같은 인물은

조선 정부의 외교 고문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기업가, 선교사 등이 조선에 들어와 각지에서 활동했다고해요!

 

 

 

 

일제강점기때 이동 수단이었던 인력거가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신문물 도입과 조선의 근대적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에요~

항구가 아닌 내륙에도 개시장, 개방지, 잡거지 등이 설정되었는데, 평양, 의주, 용암포, 서울 도성 밖의 용산, 양화진 등이

이에 해당했다고 해요~ 개시장은 외국인에게 상업 행위를 허용한 곳이고, 개방지에서는 자유로운 거주, 활동 허용,

잡거지에서는 외국인의 거류와 상업 활동이 허용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수도 한성의 중앙부에는 각종 신문물의 도입으로 도시 경관이 변하고 사람들의 생활도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외국의 공사관들 등 신식 건물이 건립되어 풍경을 바꿔놓아쏙, 서양의 식문화, 의문화 도입은 물론,

전차, 자동차 등 새로운 교통수단 도입, 전화, 전신 등의 새로운 통신수단도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조선 정부와 서양 선교사 등이 세운 신식 학교가 신교육을 하기 시작했다고 해요ㅎㅎ

 

 

 

 

조선후기 의료선교사들에 의해 사용되었던 의료 기구인 약저울, 약수저와 가위도 만나볼 수 있었어요ㅋㅋ

 

 

 

 

4. 새 국제관계 속의 조선 (Joseon Amidst New International Relations)

개항 이후 조선 정부의 개화노력은 내정 문제로 위기에 처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구식 군인의 임오군란을 진압한 청군은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파도 축출했고, 그후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는데 1880년대에 청나라는 조선을 전통적 주종관계가 아니라 실질적 지배종속 관계 아래 두고자 했지만,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은 계속되었고, 그것은 1890년대 전반 청나라와 일본의 대립으로 압축되었므며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계기고 조선에 온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가 충돌한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여

조선에 대한 중국의 전통적 영향력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해요~

 

 

 

 

19세기말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을 한눈에 살펴보기 좋게 되어 있어 이해가 쏙쏙 가더라구요~

 

 

 

 

장흥부에서 작성한 동학농민군 진압 내용 등을 기록한 문서인 동학란 토벌 전말,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일본에서 발행한 책자인 조선사건,

동학 2대 교조 최시형의 승인을 의미하는 북접법헌 날인과 손병화의 용담연원이 있는 동학 임명장이에요..

 

 

 

 

청일전쟁에 따른 국제질서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에요~

1890년대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을 둘러싸고 정면충돌했죠~

내정 개혁에 실패한 조선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는데 그를 계기로 조선에 온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가 충돌해

청일전쟁이 발발 일본이 승리했고,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던 청나라가 주변국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조선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고 해요~

아울러 조선을 둘러싼 국제관계도 근본적으로 바뀌었는데 이후 조선에 미치는 청나라의 영향력은 퇴조하고,

일본의 영향력이 강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에필로그 - 조선의 위기 (Joseon's Crisis)

청일전쟁의 결과 전통적 중화질서가 무너졌고, 일본의 지원을 받은 조선의 개화파 정부는 갑오·을미개혁을 실시하여,

조선사회를 근대화시키고자 했다고 해요~ 신분제와 과거제가 폐지되고 왕권을 제한하는 재정개혁도 시도되었죠~

건양이라는 조선 고유의 연호를 사용한 것과 태양력을 채택한 것은

전통적 중화질서에서 조선이 벗어나기 시작한 증거로 볼 수 있는데요..

개화파를 계승한 독립협회는 한반도에서 청나라의 종주권이 소멸한 것을 기념해 독립문을 세웠다고 하네요..

한편 이들 개혁에 포함된 단발령 등은 국내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외세에 의존한 개혁이라는 한계를 보였다고해요..

이제 한반도에서는 러시아와 일본이 각축을 벌이게 되었는데 그와 맞물려 조선의 내정도 크게 동요하여

조선은 새로운 위기 국면에 들어섰죠.. 조선은 국가의 존립을 위협받기에 이르렀지만,

새로운 역사적 과제를 짊어질 새 세대가 성장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1894년 음력 12월 12일 제정 · 선포된 한국 최초의 근대적 헌법인 홍범14조,

관보에 실린 1895년 9월 9일 선포된 태양력 사용 법령인 관보 호외,

조선이 청나라의 영향으로부터 독립했음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독립문 모형,

1896년 창간되었던 최초의 민간 신문으로 국민계몽과 문명개화운동의 확산과 추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독립신문

까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어 알차고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조선은 개항으로 전통적인 패권국 중국의 문명과 안보의 틀을 벗어나,

열강이 이합집산하고 각추을 벌이는 만국공법의 세계에 진입했는데

이는 조선에게는 국체의 보존이 위협받는 위기임과 동시에 근대국가로서의 성공적 변신의 기회이기도 했지만,

100여년 전 이 도전에 적절히 응전하지 못한 조선이 망국의 운명을 맞았음을 상기하며

오늘날 냉엄한 국제관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존립과 번영의 길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전시였어요~

오늘은 3월26일까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되는 특별전시를 관람하며 역사속으로 떠나보는건 어떨까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지번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로 나와 직진하다보면 우측에 위치. 역에서 도보 2분거리.

[개장시간] 09:00 ~ 18:00 (입장시간 17:00까지) / 수요일, 토요일 09:00 ~ 21:00 (입장시간 20:00까지) / 설날, 추석 휴관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10대 주차 가능 (인근 공용주차장인 세종로 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2017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모니터요원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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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역사마당에서 전시된 한-이란 공동사진전을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한국과 이란 1300년의 인연 이라는 주제로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3일까지 한-이란 공동사진전이 개최되었는데요..

사진 속에서 한국과 이란의 역사, 자연,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어 유익했답니다!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역사마당에서 진행된 한국과 이란 1300년의 인연을 살펴볼까요?^^ 

 

 

 

 

광화문역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이란 공동사진전! 한국과 이란 1300년의 인연을 살펴볼 수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역사마당 전시장..

 

 

 

 

전시장 입구에 있는 팜플렛과 함께 한-이란 공동사진전을 살펴보면 자세한 설명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더라구요~!

 

 

 

 

이란의 구전 설화집 쿠쉬나메(Kush-name)에 따르면, 페르시아 왕자가 신라 공주와 결혼 한 이야기가 있다고 해요..

이 이야기는 설화이지만, 1300여년 전 신라시대부터 페르시아와 교류가 있어,

당시 유물에서 페르시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ㅎㅎ

한국과 이란은 1962년에 수교하고, 1970년대 건설사의 진출, 원유 수입 등 협력이 있었는데요..

1980년대 이란, 이라크 전쟁 기간 위기도 있었지만, 경제, 문화 등의 영역에서 협력관계가 이어지고 있다고 해요..

'한국과 이란, 1300년의 인연' 사진전은 오랫동안 지속돼온 양국간의 이야기를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와 이란국영통신사(IRNA)가 촬영한 사진으로 돌아보고자 기획했다고 하네요^^

 

 

 

 

이란의 나라명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고, 공용어는 페르시아어이며, 수도는 테헤란, 지방제도는 31개 주,

인구는 7천900만명 등 이란에 대한 개요와 정치, 위치, 역사까지 한눈에 알기 쉽게 안내되어 있는 센스~!

 

 

 

 

페르시아와 신라의 교류 (Exchange between Shilla and Persia) 에요..

파르티아 제국 시기의 유물로 닭을 입에 문 살쾡이가 표현된 살쾡이와 닭모양 뿔잔,

뿔잔 아래 작은 구멍이 있어 아래로 흘러나온 술을 잔에 받아 마시는 날개달린 사자 장식 뿔잔,

받침대의 형태가 당시 유행하던 굽다리 접시의 형태를 사용하였는데 뿔잔이 완전히 신라화 되었음을 보여주는

뿔잔, 잔받침대부터 은잔, 봉수명, 천마총 유리잔, 문관상, 무인상 등을 살펴보며 활발한 교류를 느낄 수 있었어요!

 

 

 

 

거북등무늬 안쪽에 한 쌍의 새 등이 새겨져 있는 금동신발,

몸체가 금판 2장으로 만들어졌는데 보석이 끼워진 판 뒤쪽에는 금판 1장을 덧대고,

위와 아래 부분을 앞쪽으로 둥글게 감싸 씌운 페르시아 등의 팔찌 제작기법과 유사한 금팔찌,

금, 은 테두리 안에 보석과 유리를 끼워 넣는 기법은 고대 그리스, 로마, 서아시아 지역에서 유행하였는데

신라 5~6세기에 이와 같이 만들어진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보물 635호 장식보검까지 살펴볼 수 있었어요..

 

 

 

 

1. 멀지만 가까운 나라

- 이란은 어떤 나라인가요? (What is Iran like?)

이란 쉬라즈의 파사르가드에 있는 키루스 대왕의 묘, 웅장한 유적 페르세폴리스,

페르시아 왕을 지키는 경비대의 모습을 새긴 페르세폴리스 부조벽화,

이란 서부 쿠르디스탄 주 우라만 마을 사진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이란 남호라산 주의 보쉬루예 사막 사진이에요..

드넓게 펼쳐진 사막을 사진에 매료되어 한참을 감상했네요ㅎㅎ

 

 

 

 

- 다채롭고, 비슷한 전통문화 (Diverse and similar traditional cultures)

단오제서 풍년 기원하는 강릉 주민들과 단오때는 그네가 제격 사진..

그리고 궁에서 감상하는 풍류 음악 사진이에요..

이란 남부 호라산 지역의 전통 레슬링 버추게와 이란 전통축제 아셔예르와 비슷한 느낌이더라구요!

 

 

 

 

고인돌 너무 떨어지는 별똥별 너무 신기하더라구요~

또 낙하산을 타고 고공강하를 시범하는 특전사 장병의 모습이 마치 달 위를 걷는 듯 해서 인상적이었어요^^

 

 

 

 

- 경주와 이스파한 (Gyeongju and Isfahan)

경주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 첨성대, 경주 동궁과 월지 사진과..

 

 

 

 

화려한 이스파한 시오세폴 다리, 시오세폴 다리서 여유 즐기는 시민들, 카주다리 사진을 보니

경주와 이스파한의 닮은 점이 보이더라구요~

 

 

 

 

2. 손을 맞잡다

- 한눈에 보는 이란의 정치와 경제 (Iran's politics and economy at a glance)

이란 이슬람 혁명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군중에게 손을 흔드는 사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혁명 발발과 함께 파리에서 테헤란으로 귀국하는 사진 등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 양국 대표 뉴스통신사의 어제와 오늘 (Past and present of Korea and Iran's leading news agencies)

서울 종로구 율곡로 2길에 자리한 연합뉴스 신사옥을 보니 무척 반갑더라구요~

또한 연합뉴스 편집국도 살펴볼 수 있었구요..

 

 

 

 

이란 국영 파르스통신 외신 수신기, 연합뉴스 전무국의 전자 EXTEL,

이란 국영 파르스통신의 사진부도 살펴볼 수 있었어요..

 

 

 

 

- 수교에서 협력으로 (From establishing diplomatic ties to cooperation)

가족과 재회한 귀환 노동자, 피폭 부상자 위문하는 주한 이란 대사, 귀국하는 이란 취업 한국 근로자,

이란 카룬댐, 이란 사우스파스 가스 정제공장의 모습도 인상깊었어요..

 

 

 

 

- 내일을 위한 협력 (For cooperation of the future)

한·이란 정상 공동기자회견, 박 대통령의 이란 최고 지도자와 면담, 마이크 건네는 이란 대통령,

한-이란, 형사공조조약 서명, 한복 입은 이란 젊은이들과 만나는 박 대통령 등 이란과 함께 내일을 나아가는 모습..

 

 

 

 

3. 감성을 나누다

- 이란의 문화와 스포츠 나누다 (Iran's culture and sports)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 참석한 모습,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마스터클래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이란 바흐만 고바디 감독, 포즈 취하는 이란의 첫 여성 올림픽 메달리스트,

아시안게임 - 누구 발이 더 길까, U대회 - 아름다운 품새, 역도 남자 무제한급 사진을 통해

이란의 문화와 스포츠를 나누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 이란 속의 한국 열풍 (Korea craze in Iran)

환호하는 이란 젊은이들, 이란 테헤란의 한국문화 전파 시동을 살펴보며 반가웠어요~

 

 

 

 

- 한국 속의 이란 (Iran in Korea)

페르시안 카페트 제작과정을 보니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고,

이란과 한국의 배구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응원하는 이란 여성 관중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었어요..

 

 

 

 

하이원, 아시아 알파인 선수권대회 개최, 화려한 페르시아 예술, 차 마시는 이란 선수 사진이에요..

 

 

 

 

- 스포츠 강국, 이란과 한국 (Iran and South Korea: Strong sporting nations)

얘기 나누는 코트비 코치와 이천수 선수, 차두리가 이란의 하지 사피 선수를 일으켜주는 모습,

넘어지는 손흥민, 고지를 넘어서, 월드컵축구에서 기뻐하는 이란 골키퍼 사진을 보며

스포츠로 이란과 한국이 교감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함께하는 내일

- 에필로그 (Epilogue)

이란 대학생들이 한복 사랑해요 라고 외치며 하트를 그려 보이는 사진,

김치, 김밥 테헤란에서 성공적 데뷔, 한글을 배우러 온 테헤런 세종학당 학생들, 한지 탁본했어요 사진,

마지막으로, 국립국악원과 이란국립오케스트라단이 아리랑을 협연하고 있는 한-이란 아리랑 협연 사진을 보며

한국과 이란의 아름다운 여정, 영원한 우정을 느껴보는 시간이었어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발전한 우리나라의 행보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승하고,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면서 사회통합을 이뤄 국가 미래발전의 원동력을 확보하려는 공간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상과 관련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별 자료를 망라하여

현재와 미래를 담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바로 볼 수 있어 유익해 만족스러웠어요~!!

또한 무료관람에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야간개장이라 직장인들도 관람하기 참 좋은 것 같아요ㅎㅎ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 역사나들이 어떠신가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지번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 (옛 문화체육관광부 건물, 주한미국대사관 옆)

[개장시간] 09:00 ~ 18:00 (입장시간 : 17:00 까지) / 수요일,토요일 09:00 ~ 21:00 (야간개장) / 1월1일,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10대 가능 (인근 유료주차장인 세종로 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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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19세기 말 개항기부터 오늘날까지의 대한민국 행보를 기록한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근현대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오늘은 국립근현대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2전시실 대한민국의 기초확립을 소개해 드릴께요~

대한민국 정부 수립부터 6·25 전쟁의 참혹한 실상, 그리고 이로 인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전후 근대국가의 토대를 구축해 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그럼, 귀여운걸과 함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제2전시실 대한민국의 기초확립을 살펴볼까요?^^

 

 

 

 

국립근현대사박물관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층별 안내도..

지난번에는 대한민국의 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제1전시실을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대한민국의 기초 확립을 살펴볼 수 있는 제2전실을 살펴볼께요ㅎㅎ

 

 

 

 

대한민국역사박물관 4층에 위치한 제2전시실 대한민국의 기초 확립 (Founda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제2전시실은 대한민국의 기초확립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6·25전쟁과 전후복구, 

근대국가 토대구축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구요..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6·25 전쟁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그 이후 여러 재건 노력들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대한민국 정부 수립 → 6·25 전쟁과 전후 복구 → 근대 국가 토대 구축 까지

1945년 ~ 1960년 대한민국의 기초 확립 전시실을 살펴볼께요^^

 

 

 

 

대한민국 정부 수립 (Establishment of the Republic of Korea's Government)

- 냉전과 좌우 대립 (Cold War and the Left-Right Conflict)

- 5·10 선거와 헌법 제정 (May 10 General Election and Enactment of a Constitution)

- 대한민국 정부 수립 (Establishment of the ROK Government)

 

 

 

 

제2차 세계대전 후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대립하는 냉전체제가 형성되어

한민족의 독립국가 건설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요~

미국, 소련, 영국은 한국에 임시정부를 세우고 최고 5년간의 신탁통치 후 독립정부를 세운다고 합의하였지만,

이 합의는 좌우 대립과 미국·소련의 대립 때문에 실행될 수 없었답니다..

미국에게서 한국 문제를 념겨받은 유엔은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를 결의하였지만,

소련과 북한이 거부하여 남한에서만 총선거를 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유엔의 결의에 따른 총선거 날짜는 1948년 5월 10일로 결정되었으며,

5·10 총선거는 21세 이상의 모든 남녀에게 최초로 선거권이 부여된 직접·평등·비밀·자유 원칙의 민주선거였다고 해요!

남북한의 좌익은 5·10 총선거를 저지하려 하였으며, 일부 중도파는 남북 협상 후 총선거에 불참하였고,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5·10 총선거는 투표율 95.5%로 성공적으로 치러졌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한국인은 5·10 총선거를 거쳐 비로소 민주 국가의 주권자가 된 것이지요ㅎㅎ

 

 

 

 

5·10 총선거로 구성된 초대 국회는 가장 먼저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 공포하였죠~

헌법에서는 대한민국이 3·1 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의 독립 정신을 계승하여 건설된 나라로서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 공화국임을 밝혔고, 대통령제에 내각 책임제를 가미한 정부 형태를 선택하고

사유 재산권을 인정하고 시장 경제를 지향함을 밝혔으며, 초등 교육을 의무 교육으로 규정하였다고 해요!

정부 수립 후 국회는 일제하의 반민족행위자 처벌에 착수했지만,

이승만 행정부의 개입 때문에 활동이 조기에 종결되어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대한민국 초대 국회는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시영을 선출하였고,

초대 내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 인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로 구성되어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음을 보여주었어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이 열렸고,

대한민국 정부는 그해 12월 유엔으로부터 선거 감시가 가능했던 지역에서 합법적으로 수립된 정부로서 승인받았고,

그 후 1950년 3월까지 미국을 비롯한 26개국이 대한민국을 승인하였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6·25 전쟁과 전후 복구 (The Korean War and Post-war Recovery)

- 북한의 계획된 남침, 6·25 전쟁 (North Korea's Invasion of the South, the Korean War)

- 전쟁의 참상과 피해 (Tragic Results of the War)

- 전후 복구와 경제 원조 (Postwar Recovery and Foreign Economic Aid)

 

 

 

 

남북한에 각기 정부가 수립된 후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에서 군대를 철수하였으나,

북한은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대규모로 무기와 병력을 지원받았다고 해요..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과 무력 통일 계획을 의논하여,

1950년 4월 스탈린에게서 남침 계획을 승인받고 마우쩌둥에게서 지원을 약속받아

단기간 내에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자신한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기습 남침을 개시하였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발굴한 6·25 전쟁 당시의 무기 및 전사자 유품,

중국군 가방과 컵, 미군 비행사 안전 보장 요청서와 비행 일지 등이 진열되어 있었어요~

 

 

 

 

6·25 전쟁은 좁은 국토에서 전선이 남북으로 두 번씩 오르내리며 진행되어 전 국토를 페허로 만들었다고 해요..

주택과 산업 시설, 학교, 철도, 교량 등 기반 시설이 파괴되어

사망자와 부상자 등 인명 피해가 남한 인구의 8%에 해당하는 160여만 명에 달하였고,

수십만의 전쟁고아와 미망인이 발생하였다고 해요!

전쟁 중의 학살과 보복은 남북한 간의 증오와 불신의 골을 깊게 만들었고,

전쟁 이후 남한 사회에는 반공주의가 확고해졌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1950년 흥남철수 당시 많은 피란민을 실어 나른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DDT 분무기로 소독하는 사람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프더라구요~ㅠㅠ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화물선에 1만 4천여 명의 피난민을 싣고, 거제 장승포항까지 3일 동안 항해를 했으나,

영하의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으며,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도 탄생했던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지요..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구출작전은 하나의 배로 가장 많은 인원을 대피시킨 사례로

2004년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고 하네요!

 

 

 

 

전쟁으로 인한 물적 피해는 1953년 국민소득의 1.7배나 되는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한국인은 엄청난 피해에도 좌절하지 않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전후 복구와 재건에 나섰다고 해요..

미국은 총 27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하여 한국을 도왔으며

원조 물자에는 시설재도 있었지만, 비료, 원면, 석유, 밀 등과 같은 소비재와 원자재가 더 많았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전쟁의 포화가 집중된 서울에서는 많은 주택이 파괴되었는데

전후 월남민과 이농민 때문에 인구는 더 늘어나 주택난이 심각하였다고 해요..

새 이주민들이 인왕산, 안산, 남산, 낙산 등의 산지나 청계천 등 하천 주변에 몰려들어

판자와 천막을 재로로 판잣집을 지어 일대에 거대한 판자촌이 형성되었다고 해요..

 

 

 

 

이런 판자촌 생활은 서울 뿐 아니라 지방의 주요 도시도 마찬가지였다고 해요..

판잣집에서는 간이 부엌이 붙은 방 한 칸에서 여러 식구가 같이 생활하였는데,

판자촌 주민들은 강인한 의지와 생활력으로 삶을 헤쳐 나갔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대한민국 교육의 힘을 살펴볼 수 있는 콩나물 교실 모형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대한민국은 출범할 때부터 초등학교 의무 교육제를 택하였다고 해요!

헌법에 의무 교육을 명시하였고, 교육법에서 6년간의 초등교육을 의무화하였는데,

의무교육제는 6·25 전쟁 때문에 실시되지 못하다가 1954년부터 6개년 계획으로 추진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ㅎㅎ

교육시설이 부족함에도 1950년대 말에 초등학교 취학률이 96%에 달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중고등학교와 대학도 증설, 신설되었으며 성인을 위한 문맹 퇴치도 이루어져 1950년대 말 문맹률은 20%대로 떨어지고,

1950년대에 축적된 인적 자본은 1960년대 이후 근대화와 경제 성장의 토대가 되었다고 하네요^^

 

 

 

 

정부 수립 후 문교부가 최초로 발행한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도 전시되어 있어 반갑더라구요!

바둑아, 바둑아 나하고 놀자 식으로 소리, 글자, 단어, 문장을 동시에 가르치는 방식을 도입했는데,

이 교과서가 발행된 날인 10월 5일이 교과서의 날로 지정되었다고 해요ㅎㅎ

 

 

 

 

근대국가 토대 구축 (Building a Modern Nation)

- 국방과 경제의 기초 확립 (Building the Base for National Defense and Economy)

- 의무교육의 실시와 사회문화의 변천 (Compulsory Education and Postwar Popular Culture)

- 4·19 혁명 (April 19 Revolution)

- 제2공화국과 5·16 군사정변 (The Second Republic and May 16 Coup)

 

 

 

 

1950년대 천막을 친 가설 극장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16mm 영사기 신기하더라구요!

 

 

 

 

1955년 8월에 생산하기 시작한 첫 국산차인 시발 자동차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전쟁 후 파괴된 자동차의 부품을 활용해서 자동차를 만드는 재생업이 활발하였는데,

최무성 씨 3형제가 미군 지프의 부속품에 새로 깎아 만든 국산 부품을 결합해서 만들었고,

1955년 10월 산업박람회에서 최우수 국산품으로 선정되어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택시로 인기를 끌었다고 해요~

 

 

 

 

초대 대통령에 대해서 연임 제한을 없앤 1954년의 사사오입 개헌,

야당 당수인 조봉암을 사형에 처한 진보당 사건, 경향신문 폐간 등과 같은 이승만의 독재 정치로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고 국민의 불만이 쌓여 마침내 1960년의 3·15 부정선거에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여

마산에서 부정선거 항의 시위가 일어난 데 이어 4월 19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쏙,

이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180여 명이 숨지는 유혈 참사가 벌어졌다고 해요..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계속되자 결국 이승만은 사임하였고,

국민이 정권의 부패와 독재를 준엄히 심판한 4·19 혁명은 한국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4·19 혁명 관련 책자와 2·28 민주운동 관련 책자도 살펴볼 수 있었어요~

 

 

 

 

4·19 혁명 후 내각책임제 개헌이 이루어졌는데,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줄이고,

국무총리가 국무위원을 임명하도록 하여 실권을 갖게 되었다고 해요..

그 후 성립한 민주당 정부의 제2공화국에서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가 크게 신장하였으나,

언론 노조 운동을 비롯하여 학생운동, 통일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으로

그간 억눌렸던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되어 사회는 혼란스러웠으며

1950년대에 대폭 팽창한 군의 일부 장교들은 군 수뇌부의 퇴진을 요구하다

5·16 군사정변을 일으켜 합헌 정부를 무너뜨렸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제2전시실 대한민국의 기초 확립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의미와 6·25 전쟁의 참혹한 실상!

그리고,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전후 근대 국가의 토대를 구축해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또한 시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려 민주화 운동의 토대가 된 4·19 혁명의 의미를 되살펴 보는 시간이었어요!

다음에는 제3전시실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 제4전시실 대한민국의 선진화, 세계로의 도약을 주제로 한 전시까지

순서대로 차근차근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오늘은 근현대사를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유익하고 알찬 시간 어떠신가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지번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 (옛 문화체육관광부 건물, 주한미국대사관 옆)

[개장시간] 09:00 ~ 18:00 (입장시간 : 17:00 까지) / 수요일,토요일 09:00 ~ 21:00 (야간개장) / 1월1일,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10대 가능 (인근 유료주차장인 세종로 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2016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모니터요원으로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부터 보수를 지급 받아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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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여운걸이에요^^

근현대 대한민국 역사를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는 광화문 박물관 추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소개해 드릴께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발전한 대한민국 역사를 시대별로 4개의 전시실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답니다!

제1전시실은 대한민국의 태동, 제2전시실은 대한민국의 기초 확립, 제3전시실은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 

제4전시실은 대한민국의 선진화, 세계로의 도약을 주제로 한 전시를 살펴볼 수 있는데요..

오늘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1전시실 대한민국의 태동 전시를 살펴볼께요ㅎㅎ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에 위치한 제1전시실..

 

 

 

 

강화도조약 체결을 통해 조선이 세계에 문호를 개방한 1876년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제1전시실 대한민국의 태동 (Prelude to the Republic of Korea)..

제1전시실 입구에는 프롤로그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는데, 우주에서 지구로 그리고 위성에서 바라본 한반도의 모습이

심장 박동처럼 고동치며 밝게 빛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특히 애국가를 배경으로 백두산과 독도를 비롯해 우리 영토의 동서남북단을 보여준 다음,

마지막으로 가운데 둥근 반구 위에 태극기로 변하는 영상연출로 대한민국의 상징인 애국가와 태극기

그리고 대한민국의 영토를 이해하는 코너로 마련되어 있었어요!

 

 

 

 

프롤로그 → 자주적 근대 국가의 꿈과 좌절 →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 1945년 8·15 광복 까지

개항기부터 광복까지 다룬 1976년 ~ 1945년 대한민국의 태동 전시실을 살펴볼께요^^

 

 

 

 

자주적 근대 국가의 꿈과 좌절 (Attempt to Establish an Independent Modern Nation)

- 개항과 근대화의 모색 (Opening of Ports and Quest for Modernization)

- 독립협회와 대한제국의 선포 (Independence Club and Declaration of the Korean Empire)

- 국권 상실 (Loss of Korean National Sovereignty)

 

 

 

 

외침에 대비하여 포대, 봉수대 등 강화도의 방어 시설을 그린 강화 방어 지도,

유길준이 1889년 원고를 쓰고 1895년에 출판한 서양기행문으로 우리의 근대 국가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를

각 분야별로 분석한 개화파의 근대화 방략서 서유견문,

조선 전쟁 이라는 제목으로 신미양요에서의 미군의 전투 삽화를 실은 미국 주간지,

면암 최익현의 문집으로 개항을 반대했던 위정척사파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일성록..

 

 

 

 

19세기 조선 연해에 서양의 이양선이 자주 출몰하며 통상을 요구했지만 조선 정부는 이를 거부하였죠~

그러나 일본과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고 개항하였지만 이 조약은 불평등 조약이었고,

이어서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과도 조약을 체결하였는데 개항 후 조선은 서구 문물을 수용하는 개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문호를 개방한 이후 새로운 생활 문화가 들어오게 되었다고 해요..

 

 

 

 

1892년부터 1893년까지 진행되었던 동학교단의 조직적 교조신원운동과 1894년 1월 고부 농민봉기를 도화선으로

3월 무장에서 전면적으로 시작되어 1년동안 진행된 동학농민혁명을 비롯해 태극 문양 호적 문서 목판,

갑신정변에서 김옥균의 역할을 서술한 책, 대한제국 궁내부 평식원에서 사용한 근대 도량형기,

민족 계몽을 위해 발간된 조선역사, 동국역대사략, 태서신사 등 역사 서적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1883년 10월 1일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

1898년 8월 창간된 한글 신문으로, 상류층을 상대로 한 황성신문과 반대로 일반 민중을 대상으로 한 제국신문,

남궁억 등이 대한황성신문의 판권을 인수하여 제호를 바꿔서 창간한 일간지인 황성신문,

동학란 토벌 전말을 기록한 장흥부 문서, 동학임명장 등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1886년부터 1890년까지 조선의 외교 고문을 지낸 미국의 데니에게

고종이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데니태극기부터 오른쪽 상단의 김구 서명 태극기,

오른쪽 하단의 광복군 태극기 등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태극기를 모두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1900년대 초 태극기 배지와 대한제국 태극기 도안도 살펴볼 수 있었어요ㅎㅎ

 

 

 

 

정부와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신식 학교에서 근대 학문을 가르쳤으며, 서양식 건축과 전기, 전화와 전신, 교통 시설,

우편 제도, 금융 제도 등이 도입되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사진이나 그림을 입체감 있게 보는 도구 입체경의 모습이에요~

개항 이후 19세기 말 20세기초 조선의 풍경을 담은 사진 그림 등이 주요 소재가 되었다고 해요ㅎㅎ

 

 

 

 

정부 고관들과 지식인들은 외세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자는 취지로

독립문 건립과 독립 공원 조성을 창립 사업으로 내걸고 독립협회를 창설했다고 하네요!

 

 

 

 

일본에 의해 명성 황후가 시해당하는 을미사변을 겪은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아관파천 하였고,

친러파 정권이 성립하였으며, 조선의 자주독립과 고종의 환궁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자 1년여 만에 환궁한 고종은

황제로 즉위하고 대한제국 수립을 선포하게 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고종 황제 즉위식과 황후, 황태자 책봉, 각종 의장물과 어보, 어책 제작에 관한 내용을 실은 책인 대례의궤,

1899년 8월 17일 대한제국이 공포한 국가 제도 법령인 대한국국제, 태황제 폐하 즉위식 기념장,

독일인 음악가 에케르트가 작곡한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 이화문(버클, 기념메달)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품격이 느껴지는 칙명지보에요..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제국의 지위에 맞게 만든 옥새 중의 하나라고 하네요~ㅎㅎ

 

 

 

 

조선을 둘러싼 열각의 각축을 살펴볼 수 있는 코너..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여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자, 러시아는 독일·프랑스와 함께 일본에 압력을 가해

랴오둥 반도를 청에 돌려주게 하였고, 이후 조선 왕실은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여 일본의 간섭을 막으려 하였는데,

이에 위기감을 느낀 일본이 명성 황후를 시해하여 사태의 반전을 꾀하였으나,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함에 따라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었죠..

이후 한동안 러시아와 일본이 대치하였으나, 영국과 미국의 지지를 얻은 일본이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차지하였음을 알 수 있었어요!

 

 

 

 

러일 전쟁 후 영국, 미국, 러시아 등의 열강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승인받은 일본은

1905년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는 을사늑약을 하였고,

장지연은 황성신문에 '오늘 목 놓아 통곡한다.' 라는 논설을 실어 이를 규탄하였고,

민영환과 조병세는 이에 항의하여 자결하였으며 고종은 대한제국의 국권을 되찾으려고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하는 등 구국 외교 활동을 펼쳤으나, 1910년에 대한제국은 일본에 강제로 병합된 일본의 국권 침탈..ㅠㅠ

고종 황제가 이탈리아 왕에게 보낸 비밀 친서, 을사늑약문, 민영환 유서, 헐버트의 대한제국흥망사 등 전시품들~

 

 

 

 

한국이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기고 내정까지 간섭받는 상황에 이르자

국권 수호를 위해 힘을 기르자는 계몽 운동이 일어났으며,

일본군에 맞설 군사력을 기르기 위해 국외 독립군 기지 건설 및

일본에 대한 국가 채무를 상환하려는 국채 보상 운동도 전개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1909년에 지석영이 짓고 정기선이 교정한 국어 사전 형식의 교과서인 언문, 대한협회보 및 기호흥학회 월보,

1904년 이승만이 저술한 독립 운동 관련 사상서인 독립정신, 국채보상운동 광고지,

대성학교 모표, 대한제국기 외국 역사서, 1908년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잡지 소년, 대한자강회월보 창간호 등..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의병이 봉기하였고, 명성 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항의하는 을미의병과

을사늑약에 항의하는 을사의병, 그리고 고종 퇴위와 군대 해산에 항의하는 정미의병이 차례로 이어졌다는 사실!!

안중근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로 보물 제569호로 지정되어 있는 안중근 의사 유묵이 가장 눈에 띄네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뤼순감옥에 투옥되어 있을 때 감찰관인 야스오카에게 써준 친필유묵이에요~

이 외에도 대한제국 의병 관련 서적, 학자이자 애국지사인 최익현의 시문집인 면암집,

안중근 의사 추모기념 포스터, 안중근전, 호남 지역 의병 진압 관련 사진집 등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ㅎㅎ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Provisional Government of Republic of Korea and the Independence Movement)

- 일제 강점기 억압과 수탈 (Suppression and Exploitation Under Japanese Occupation)

- 3·1 운동과 국내 민족운동 (March Ⅰ Independence Movement and Domestic National Movement)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과 해외독립운동

  (Activities of Provisional Government and Oversea Independence Movement)

 

일제강점기의 탄압과 수탈은 좁고 낮은 통로에 장애물과 침목으로 고난의 역사를 공간에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조선총독부 편찬 보통학교 교과서, 궁성요배 전단, 황국 신민의 서사, 창씨개명 사실을 드러내는 호적부 등

우리 말, 우리 이름의 상실 등 고난과 역경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어요..

일제는 한국과 일본이 한 몸이며, 한국인과 일본인의 조상과 뿌리가 같다고 선전하면서

한국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며,

천황을 향해 절하고 신사에 참배하도록 강요하였다고 해요~

 

 

 

 

조선징병독본, 육군지원병 명패, 공출사발 등 전쟁 강제 동원의 아픈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품들..

1938년 부터 지원병 및 학병제, 징병제 등으로 수많은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일제의 침략 전쟁터로 끌려갔고,

많은 노무자가 모집, 알선, 징용의 방식으로 탄광, 공사장, 공장에 동원되었으며,

젊은 여성들은 근로정신대와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되었다니..ㅠㅠ

수많은 사람들이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질병, 사고, 폭격 때문에 불구자가 되거나 목숨을 잃었고,

전쟁이 끝났는데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많았음을 알 수 있었어요~

또 일제는 헐값에 정부에 판매하는 공출이나 강제 헌납 등의 방식으로 쌀, 보리, 금속류 등의 물자를 수탈하였다고 해요..

 

 

 

 

3.1운동 코너에서는 기미독립선언서의 중심사상을 인터랙티브 무빙 텍스트 기법으로 연출하여

3.1운동 정신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선언서에 담긴 평등, 공존, 독립, 자유, 평화 등의 중요한 가치들을 깊이 새길 수 있었고,

이와 함께 독립선언서 원본도 진열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어요!

 

 

 

 

한국인 교육을 확충하기 위한 학교 설립 운동, 문맹 퇴치를 위한 문자 보급 운동, 한글 운동, 언론 운동,

일제의 민족 차별을 거부한 청년·학생운동, 어린이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소년 운동,

농민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농민운동, 인력 수탁에 항거한 노동운동, 경제 자립을 추구한 물산장려운동 등

3.1운동 이후 국내 각 분야에서 한국인의 권익을 옹호하고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민족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는 한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하나의 목소리였다고 해요~

형평사 규약집, 조선물산장려회 회보, 개벽, 조선어 독본 음반, 조선어 표준말 모음, 조선어학회 발간 한글 잡지,

신간회 강령과 규약, 조선일보 문자보급 교재 한글원본, 동아일보 브나로드 운동 당시 일용 계수법 교재,

민립 대학 설립 총회 출석 통지서, 님의 침묵, 솟재 보람(우등증서) 등 전시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어요ㅎㅎ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동경로, 국내에서의 민족운동과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등을

실물자료와 보조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고, '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 영상실은

광복 이전의 옛날 모습과 지금 똑같은 위치에서 촬영한 사진을 비교하여 역사의 현장감을 더해주었어요!

 

 

 

 

1945년 8·15 광복 (Liberation of Korea, 1945)

- 광복의 기쁨과 열망 (Joy of Liberation)

- 38선 설정과 민족 분단 (38th Parallel and Separation of the Nation)

- 미군정기 한국 사회의 변화 (Changes under US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8.15광복에서는 독립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의 사진으로 숫자 8.15의 모자이크를 만든 점이 독특했어요!

 

 

 

 

광복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 8.15 광복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두 개의 스크린을 겹쳐서 만든 투레이어 특수영상 시스템을 적용해 입체감과 현장감을 부각시킨점이 좋더라구요^^

 

 

 

 

광복을 맞이하였지만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냉전 속에서 한반도는 38선을 기준으로 분단을 맞게 되었는데요..

전면의 38선 팻말과 바닥의 38선 표시를 연출해 한눈에 들어오네요~

 

 

 

 

광복의 기쁨은 새 나라 건설에 대한 희망으로 이어졌는데요..

코리아 타임즈(창간호), 조선 건국 가사집, 광복 기념 관련 우표와 엽서, 조선국 독립 기념 메달, 일본의 항복,

일본 항복 기사 보도 등 기념 메달, 우표, 엽서, 포스터, 서적을 통해 희망에 넘친 당시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어요~

 

 

 

 

38선 팻말이에요..

오른쪽에서는 남한에서의 사태 전개를, 왼쪽에서는 북한에서의 사태 전개를

사진과 실물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남한에 주둔한 미군은 조선총독부 통치기구를 접수하여 직접 남한을 통치하는 3년간의 미군정을 실시하였는데,

인플레이션과 물자 부족으로 곤란을 겪는 남한에 식료품, 피복, 의약품, 석탄, 석유류 등의 행정 구호 원조를 하고,

경제 부흥 원조로서 철광석, 중유, 면화, 건축 자재, 화학 약품을 지원하였다고 해요~

제1전시실 대한민국의 태동을 통해 자주적 근대 국가의 꿈과 노력

그리고 국권 회복을 위해 희생한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다음에는 제2전시실 대한민국의 기초 확립, 제3전시실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 

제4전시실 대한민국의 선진화, 세계로의 도약을 주제로 한 전시까지 순서대로 차근차근 소개해 드릴께요ㅎㅎ

나들이 다니기 딱 좋은 요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관람하며 유익하고 뜻깊은 시간 어떠신가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지번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2-1)

[전화번호] 02-3703-9200

[찾아가는길]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 (옛 문화체육관광부 건물, 주한미국대사관 옆)

[개장시간] 09:00 ~ 18:00 (입장시간 : 17:00 까지) / 수요일,토요일 09:00 ~ 21:00 (야간개장) / 1월1일,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주차가능여부] 10대 가능 (인근 유료주차장인 세종로 주차장 이용)

[홈페이지] http://www.much.go.kr/ 

 

 

"2016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모니터요원으로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부터 보수를 지급 받아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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